국민들의 물가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에 공감은 하지만 시장 상황 전반에 대한 고려 없이 일부분에 해당하는 최종 생산업체만을 겨냥한 압박은 가뜩이나 원가 부담에 시달리는 각 업계 박탈감만 키운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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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낙농업계와 유업계에 따르면 낙농진흥회는 지난 9일부터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올해 원유 가격을 정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기존에는 원유 가격 산정시 생산비 증감분만 반영했찌만 올해부터는 생산비 외에도 우유 소비시장 상황 전반을 반영해 결정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적용한다. 지난해 사료비와 전기료 등 전반적인 생산비 부담이 커지면서 올해 원유 가격 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상 폭은 1ℓ당 69~104원 범위로 결정된 상황이다.
지난해 원유 1ℓ당 가격은 996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올해 최소 1065원에서 1100원까지 오른다는 얘기다. 6.9~10.4%의 인상 폭을 적용하면 현재 2800원대 후반의 흰우유 최종 판매가격이 3000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설탕의 경우 세계 사탕수수 생산 1위 국가인 브라질부터 인도(2위), 태국(4위) 등이 지난해 폭염과 가뭄, 홍수까지 이상기후에 시달리며 생산량은 감소한 반면 엔데믹 전환 이후 소비는 크게 늘면서 가격이 껑충 뛰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설탕은 제당업체들이 원당(비정제 설탕)을 수입해 생산·판매하는 제품이 주를 이룬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뉴욕상업거래소(NYBOT)에서 지난 22일 거래된 원당 가격은 t당 549.6달러로 전년(405.2달러) 대비 무려 35.6% 껑충 뛰었다.
소금도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논란으로 최근 가격이 널뛰기 중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전년 1만1218원 수준이었던 굵은소금(5㎏) 소매가격은 이달 중순 1만4000원대 안팎으로 치솟았다. 지난 22일 기준 소매가격은 1만4425원까지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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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원재료 가격이 국민 물가 부담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는 최근 라면업계에 국제 밀 가격 내림세를 언급하며 국내 라면 소매가격 인하를 요구하는가 하면 유업계에도 각종 유제품 가격 인상 자제를 압박하고 나섰다.
다만 관련 업계에선 섣부른 발언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A사 관계자는 “실제 국산 우유를 사용하는 가공식품이 상당히 많다”며 “정부의 발언으로 국산 우유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늘어나는 원재료 부담을 오롯이 끌어안아야 하는 처지가 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B사 관계자는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뿐 아니라 가격 인상의 원인인 원재료 관련 낙농가도 함께 고통분담을 요구해야 하는 게 아니냐”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라면 소매가격 인하를 검토 중인 라면업계에서도 불만이 적지 않다. 정부가 라면 소매가격 인하를 언급할 당시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만을 겨냥해 이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만 했다.
C사 관계자는 “해외 밀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도 국내 제분업체들의 밀가루 공급 가격과 다른 부자재 가격 상황, 전기세와 인건·물류비 등 산업구조, 원가 결정 구조 등에 대한 고려가 우선됐어야 한다”며 “뒤늦게 정부가 제분업체와 간담회를 통해 국내 밀가루 공급 가격을 논의하고 나선다니 향후 라면 소매가격 인하에 대한 여력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오는 26일 국내 주요 제분업체들과 간담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높아진 원재료 가격을 감내해오던 국내 주요 식음료 업체들은 최근 부담이 더욱 가중됨에 따라 정부의 압박에도 가격 조정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매일유업은 다음달부로 일부 치즈가격을 최대 18.8% 인상키로 했다. 동원F&B는 스위트콘·황도·꽁치, 롯데웰푸드는 아이스크림류, 대상 청정원은 안주류·만두 등 국내 여러 식음료 업체들도 속속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