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물가, 상품·주거비 제외 서비스 상승 압력
통계청에 따르면 자가주거비(주택 임차시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비용) 포함 물가상승률은 3월 전년동월비 3.6%로 작년 3월(3.7%) 이후 1년 만에 3%대로 진입했다. 물가지수에는 자가주거비가 9% 정도밖에 반영되지 않으나 자가주거비 포함 물가지수는 27% 가량 반영돼 세 배 가량 더 반영된다. 집값 및 전셋값 하락으로 주거비를 더 많이 반영한 물가지표가 먼저 하락하고 있는 셈이다. 4월엔 전체 물가지수 또한 작년 2월(3.7%) 이후 처음으로 3%대로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을 반영해 장용성 신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21일 기자들과 만나 현재의 물가지표가 과대 평가돼 있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에선 물가상승세가 빠르게 꺾이고 있다고 판단하진 않고 있다. 전체 물가상승률은 에너지 가격의 기저효과로 빠르게 하락하지만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두 달 째 4.0%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4월부턴 근원물가가 전체 물가상승률을 상회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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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비를 제외한 전체 서비스 물가상승률은 올 1월 4.3%에서 3월 4.5%로 상승폭이 확대됐다. 관련 지수 내 품목 142개 중 절반 가량인 70개가 3월 전년동월비 5% 이상 상승했다. 외식비 외에 의복수선료, 자동차 학원비, 엔진오일 교체료, 가사도우미료, 간병도우미료, 대리운전 이용료, 골프장·노래방·놀이시설 이용료, 운동경기 관람료 등을 중심으로 가격이 올랐다. 마스크 착용 전면 폐지 등에 소비 심리가 개선되면서 여행, 여가 활동 관련 서비스 비용이 상승한 것으로 풀이된다.
근원 상품 물가 상승세 둔화도 더디게 나타난다. 공업제품 중 석유류는 3월 전년동월비 14.2%나 급락하는 등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이어가 공업제품 물가를 1월 6.0%에서 3월 2.9%로 대폭 떨어뜨리는 데 공언했다. 그러나 가공식품은 같은 기간 10.3%에서 9.1%, 섬유제품은 6.1%에서 6.7%, 화장품은 10.3%에서 8.9%로 오름세가 확대되거나 하락하더라도 그 폭이 작은 것으로 조사됐다.
근원물가, 왜 빨리 안 떨어지나
금리를 1년 반 동안 무려 3%포인트나 인상하면서 가계의 이자부담을 늘리고 집값을 떨어뜨리는 등 금리 인상 효과가 나타나고 있음에도 왜 근원물가는 안 떨어질까.
한은에선 근원물가 상승 흐름이 스티키한 이유에 대해 타이트한 노동시장, 유가 등 원가 부담의 소비자 물가 전가에 따른 2차 효과 등을 제시한다.
그 밖에는 작년 유가가 올랐던 부분이 장기간에 걸쳐 소비자 물가에 반영되는 등 ‘2차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가가 10%포인트 오르면 미국은 소비자 물가에 전가되는데 1년이 걸리나 우리나라는 2년이 걸린다. 더구나 작년 원화 가치 하락에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은 누적돼 있다.
이런 가운데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뒤늦게 이뤄지면 비용 충격이 또 다시 가해질 수 있는 데다 소비가 최근 들어 개선되고 있어 두 가지 요인이 맞물릴 경우 근원물가 상승세를 자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퇴임한 주상영 금통위원은 물가가 잡히지 않은 요인에 대해 수요의 이동 관점에서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주 위원은 최근 퇴임사를 통해 ”인플레이션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거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할 때 발생하는데 팬데믹 기간 중에는 과거와 달리 특정 부문에서의 공급 차질로 가격이 상승하고 그에 따라 다른 부문으로 수요가 이동해 발생하는 연쇄적 가격 상승이 나타났다“며 ”이 과정에서 수요가 줄어드는 부문이 있음에도 가격의 경직성이 작동해 경제 전반의 인플레이션이 제어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최근엔 수요가 내구재 등 상품에서 비내구재와 서비스로 이동하면서 가격 상승이 제어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꺾이지 않은 근원물가를 두고 금통위원간 다른 해법을 제시할지 여부도 주목된다. 주 위원과 박기영 위원이 퇴임하고 장용성, 박춘섭 위원이 합류한 만큼 금통위원간 근원물가 상승세를 해석하고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비둘기파(완화 선호)로 분류됐던 주 위원은 ”팬데믹 기간의 이례적인 인플레이션 원인을 단순히 총수요, 총공급의 총량 개념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며 ”정책 대응의 방향이나 강도에 있어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