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제과 시장은 고급화에 진입한다. 소득 수준이 오르면서 제과에 대한 기대치가 상승하던 시기와 맞물리면서다. 과자 일색이던 제품군에 베이커리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들여온 `도라 케이크`나 일제 케이크 `퍼피`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그렇다고 누구나 사 먹기는 어려웠다. 양산에 성공한 국산 제품이 없어서 직수입에 의존했거니와 그러다 보니 가격이 비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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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날` 먹던 케이크를 대중화한 게 해태제과 오예스(1984년 출시)다. 당시 해태제과 임직원이 받은 특명은 두 가지다. 수입품이 지배하던 케이크를 국산화하고 문턱을 낮춰 대중화하는 것이다. 수입산을 베끼지 않는 게 국산화하는 길이기도 했다. 사실 베끼고 싶어도 그럴 게 없던 상황이었다. 케이크 저변 자체가 없었으니 실패든 성공이든 해태제과가 처음이었다.
제품 개발에 착수한 지 4년이 지난 1984년 초코 케이크 오예스가 세상에 나왔다. 서양의 전유물로나 여기던 사치품 케이크 과자류가 국내에서 대중화에 성공한 것은 처음이었다. 해태제과가 선택한 차별화 비법은 `물`이었다. 촉촉한 빵과 달콤한 크림의 맛을 살려 케이크의 풍미를 끌어올리는 것은 식감이다. 식감을 살리고자 수분 함량 18%로 유지했다. 업계 최대 수준이었다.
서울 아시안게임(1986년)과 올림픽(1988년)을 앞둔 시점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국제 스포츠 대회를 유치해 세계화를 이룩하고자 하던 국민의 염원은 수입산을 대체할 국산 케이크를 개발하고자 했던 해태제과의 사력과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오예스 작명 비화는 흥미롭다.
오예스 개발이 이뤄지던 1980년대 초, 서울 이태원이나 용산 등지에서는 해태제과 임직원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적을 모르고 적진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외국인에게 오예스 시제품 시식을 권하려고 그 지역을 찾아간 것이다. 오예스를 먹은 외국인들이 보인 반응 가운데 “오예스”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현지인도 감탄하는 맛`이라는 의미에서 `오예스`를 그대로 따서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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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스 소비기한을 보면 제조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가늠할 만하다. 오예스는 출시 이후 6개월 이내 소비(유통기한)하도록 제조하는데 일반 비스킷 등 과자류가 1년 이내인 점과 비교하면 절반쯤 짧다. 수분이 많아서 변질이 쉬운 탓이다. 수분 함량을 늘리는 건 일이 아니었다. 품질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제조 이후 소비되기까지 유통 과정을 견딜 수 없다. 맛이 균일하지 못하면 공산품으로 만들기 어려웠고 그러면 대중화도 물거품이었다.
지금의 오예스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여름이 골치였다. 기온이 오를수록 변질 위험이 커졌다. 그래서 초창기 오예스는 여름에 수분 함량을 12%로 낮췄다. 그러자 겨울 오예스와 여름 오예스 맛이 달라졌다. 항의가 빗발쳤으나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 이런 터에 출시 초기는 매해 여름이면 오예스 매출이 하락했다.
변질의 한계를 극복한 시기는 2006년이다. 이때부터는 오예스 촉촉함은 사시사철 똑같이 유지됐다. 여름이면 12%까지 내려간 수분 함량을 연중 18%로 균등하게 맞췄다. 까다롭고 엄격한 품질관리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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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스에 쓸 물을 관리하고자 전담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있다. 오예스 공장에는 물 관리를 전담하는 직원이 생수 전용 보관 탱크를 관리한다. 이곳은 공장장이나 회사 임원이라도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탱크는 대장균 측정장치, 수소이온농도 측정기, 탁도 점검 기기, 미생물 측정기 등 설비를 갖추고 있다. 엔간한 생수 제조 시설을 방불케 할 수준이다.
오예스 공장 출입구가 모두 `ㄷ`자(字) 형태로 돼 있는 것도 위생과 관련돼 있다. 통상 직진으로 나는 날벌레의 비행 특성을 고려해 출입구를 이렇게 만들었다. 수분이 많은 제품은 유난히 날벌레가 끼기 때문이다.
각고의 노력이 이어진 결과 현재의 오예스는 수분 함량을 20%까지 끌어올렸다. 국내 최다 수준이다. “오예스를 쥐어짜면 물이 나올 정도”라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닐 정도다.
유럽과 미주 등지에서 케이크를 수입해오던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이쪽 지역을 포함해 14개국으로 오예스를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판매량은 70억여 개다. 한 줄로 늘어뜨리면 지구를 20바퀴 가까이(포장재 11cm로 환산한 77만㎞·지구 둘레 4만㎞ 기준) 도는 양이다.
해태제과 관계자는 “오예스는 맛을 위해 수분을 택한 대신 품질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는 제품”이라며 “공장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 버금갈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최상의 무균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