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에도 흥행견인…얼굴마담 넘어 뮤지컬 대중화 일등공신으로

[아이돌 뮤지컬 전성시대]①
김준수·옥주현 뮤지컬 진출 10년, 시장 3배 가까이 성장
세븐틴 도겸·NCT 도영·엑소 시우민…
출연 회차 전석 매진 이어가며 흥행
"대체불가 자기만의 브랜드 만들어야"
  • 등록 2021-10-01 오전 5:55:10

    수정 2021-10-01 오전 5:55:1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아이돌 출신 가수들의 입지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아이돌 가수들은 코로나19로 관객을 온전히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뮤지컬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흥행을 견인하며 시장을 지탱하는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공연계가 위축된 2020년, 뮤지컬 시장을 떠받친 것은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작품이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이 집계한 2020년 뮤지컬 티켓 판매 10위권 내 작품을 살펴보면 아이돌 출신 배우가 출연한 작품은 ‘모차르트!’ ‘드라큘라’(이상 김준수), ‘킹키부츠’(인피니트 김성규), ‘웃는 남자’(엑소 수호), ‘레베카’(옥주현), ‘렌트’(오종혁), ‘베르테르’(슈퍼주니어 규현) 등 총 8편에 달했다.

2020년 뮤지컬 예매 랭킹 톱10(디자인=김일환 기자)
거리두기 4단계에도 매출타격 크지 않아

최근 확진자수 급증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상황에서도 ‘엑스칼리버’ ‘마리 앙투아네트’ 등 아이돌 출연 뮤지컬은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공연시장 매출은 7월 225억 4319만원, 8월 217억 7789만원, 9월 227억 8098만원으로 큰 변동이 없었다. 공연시장에서 70~80%의 비중을 차지하는 뮤지컬의 흥행이 유지됐기 때문이다.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뮤지컬에 진지하게 임하는 아이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그 영향으로 아이돌 출연 뮤지컬 또한 대극장을 넘어 중소극장까지 그 폭이 넓어지고 있다”며 “글로벌 팬덤에 한국의 뮤지컬을 알리며 작품 유통에 기여하는 부분도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뮤지컬에 출연 중인 대표적인 아이돌 가수는 세븐틴 도겸(‘엑스칼리버’), NCT 도영(‘마리 앙투아네트’), 뉴이스트 렌(‘헤드윅’), 엑소 시우민(‘하데스타운’) 등이다. 이들의 흥행력은 티켓 예매 현황에서 잘 드러난다. 티켓 예매처 인터파크를 통해 확인한 결과 ‘마리 앙투아네트’는 도영의 출연 회차가 가장 먼저 매진됐다. ‘엑스칼리버’는 한때 도겸의 출연 회차가 다른 배우들의 출연 회차를 제치고 전석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국내 뮤지컬 시장은 2010년을 기점으로 코로나19 이전까지 성장을 거듭해왔다. 아이돌 출신인 김준수, 옥주현 등 티켓파워 1위를 자랑하는 배우들의 활약 때문이다. 2010년 945억(이하 인터파크 매출액 기준)에 불과했던 국내 뮤지컬 전체 매출액은 2018년 약 3배에 달하는 2571억원까지 성장했고, 2019년에도 2137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아이돌 출연 뮤지컬이 흥행을 하는 배경에는 코로나19가 있다. 코로나19로 아이돌 가수들이 콘서트나 팬 미팅 등을 열지 못하는 상황에서 뮤지컬은 이제 팬과 아이돌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됐다. 공연 관계자들은 “아이돌이 출연하는 공연 회차의 경우 다른 회차에 비해 10~20대 젊은 관객의 비중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는 “코로나19로 공연 소비가 위축되고 있음에도 현재 시장이 유지되고 있는 데는 아이돌 팬덤의 영향이 크다”며 “특히 대극장 뮤지컬의 경우 팬덤이 없다면 공연을 이어가기 힘든데, 그런 점에서 현재 뮤지컬 시장은 아이돌과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뮤지컬 시장 매출 변화(디자인=김일환 기자)
몸에 익은 연습, 뮤지컬서도 인정받는 발판 돼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뮤지컬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 받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소녀시대 출신 티파니 영은 지난 4~7월 서울에서 공연한 뮤지컬 ‘시카고’에서 록시 하트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호평을 받았다. 특히 티파니 영은 ‘시카고’에 출연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제작사도 모르게 오디션에 참여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구구단 출신 가수 겸 배우 김세정도 뮤지컬 ‘레드북’에서 주인공 안나 역으로 열연하며 뮤지컬배우로서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

‘시카고’를 제작한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티파니 영의 경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오디션장에 나타나 모두가 놀랐고, 다른 지원자 못지않게 작품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해와서 또 놀랐다”며 “아이돌 가수라도 작품을 위해 필요한 실력을 갖추고 오디션을 충분히 통과한다면 당연히 캐스팅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준수를 비롯해 많은 아이돌 가수를 캐스팅해온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는 “아이돌의 경우 평균 5년, 길면 10년 가까이 연습을 한다”며 “그만큼 아이돌은 오랜 연습으로 춤, 노래, 연기 실력을 갖춘데다 단체활동에도 익숙하기 때문에 뮤지컬에서도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는 여건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뮤지컬 출연이 결정된 뒤 누구보다 더 열심히 연습한다는 점도 아이돌 가수들의 장점이다. 엄 대표는 “몇몇 아이돌의 경우 뮤지컬 출연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따로 트레이닝을 시키기도 한다”며 “도겸의 경우 ‘엑스칼리버’ 초연보다 이번 재연에서 호흡이 더 좋아졌고, 도영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첫 뮤지컬임에도 바쁜 스케줄을 쪼개가며 연습에 참여하는 열정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이제는 뮤지컬과 아이돌의 상승 효과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아이돌이 뮤지컬에 출연한다고 무조건 시너지가 나지는 않는다며”며 “작품과 어울리는 캐스팅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아이돌의 경우 장기적인 안목으로 초연 창작뮤지컬에 출연해 그 작품을 자신만의 브랜드로 가져간다면 굉장한 흥행 파괴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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