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10년전 하우스푸어 사태 잊었나

  • 등록 2021-05-10 오전 5:10:00

    수정 2021-05-10 오전 5:10:00

이데일리DB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당정이 청년과 무주택자를 중심으로 가계대출 문턱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나친 대출규제가 상대적으로 돈이 부족한 청년층과 무주택자의 ‘내집마련 사다리’를 끊었다는 비판이 일자 대출규제 완화라는 처방을 내린 것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송영길 대표는 당내 대표 경선 과정에서 청년을 비롯한 무주택 실수요자에 한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비율을 90%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과 수도권을 포함한 규제 지역에서도 연소득과 주택가격 등 일정요건을 충족하는 서민·실수요자에게 현재 40~50%인 LTV와 DTI 등을 10%포인트(p) 가산하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당정은 여기에 LTV 한도를 10%포인트 더 주고 기존의 부부합산 연소득 기준도 8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주택가격요건은 6억원 이하에서 9억원 이하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안이 확정되면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는 60%, 조정대상지역은 LTV가 70%까지 확대된다.

이런 규제 완화 조치가 청년층과 무주택 서민 금융지원이라는 명분에 부합하는 지 의문이다. 서울의 경우 중소형 아파트 평균가격이 10억원을 육박한다. 비교적 저렴한 8억짜리 아파트를 산다고 가정하면 4억8000만원의 대출을 끼고도 3억2000만원을 마련해야 한다. 부모의 지원을 받거나 고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무주택자나 청년층은 접근하기 힘든 가격이다.

반면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막으려 대출규제를 강화했던 그간의 정책과는 방향이 반대다. 빚내서 집사라는 확실한 신호로 해석돼 주택 구매심리를 자극해 시장을 과열시키는 부작용만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를 고려하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1700조원을 넘어섰다. 국내 총생산(GDP)의 98.6%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얼마 전 우리나라 가계부채 가운데 부동산 담보대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며 이례적으로 경고장을 보냈을 정도다. 집값이 하락하면 ‘영끌(영혼을 끌어모아 대출)’ 대출을 통해 집을 산 사람들이 버티기 쉽지 않다. 자칫 가계부채가 가계와 은행, 국가 전체의 리스크로 전이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 부동산시장이 한창 뜨거웠던 2006~2008년 당시 30~40세대가 중심이 돼 대출을 끼고 주택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사회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이른바 ‘하우스푸어’ 사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집값이 하락하자 엄청난 손실을 봤다.

마침 미국에서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주택가격 역시 언제까지 오를 수만은 없다. 가뜩이나 집값이 부푼 상황에서 이번에 대출길을 열어준 청년층이나 서민들이 자칫 주택시장의 상투를 잡고 제2의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위험을 배제할 수도 없다.

대부분 청년과 무주택 서민이 진짜 원하는 것은 대출 확대가 아니다. 합리적 비용으로 이사 걱정없이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공급해달라는 것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해 대출 규제를 풀었다가 더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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