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위기 시에는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하라는 조언을 한다. 이 또한 기존에 또는 현재 생겨날 수 있는 부서 간 사일로를 최소화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 사일로가 존재하는 기업의 위기관리는 몇 가지 주된 특징이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서로 대응하는 방식이나 프로세스가 겹치고 충돌한다.
당연한 결과다. 관제탑 없는 짙게 안개 낀 인천공항을 상상해 보자. 세 번째 특징은 위기관리에 결국 실패한다. 그 후 그 실패 원인도 오리무중이 된다. 개선은 물 건너간다.
쉽게 표현하자면 사일로가 존재하는 기업의 위기관리는 그냥 ‘아수라장’ 그대로다. 일부 기업에서는 이런 아수라장의 경험을 하고 난 뒤, 최고의사결정권자를 중심으로 사일로 간 조율을 하는 위기관리 관제를 시도해 보기도 한다. 최고의사결정권자 사무실 앞에 부서장들이 연이어 줄 서서 상황을 보고하고 부서별 대응을 보고하는 것이다.
“뭐가 좋은 일이라고 모여서 마주 앉아 이야기해야 하는가?” “왼손이 아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이야기가 있지” “의사결정은 극소수 핵심인력이 내리면 되지” “각 부서는 자기 해야 할 일을 알아서 하도록 하시오” “왜 굳이 다른 부서가 어떤 대응을 하는지 알아야 하나?” 이런 이야기가 내부에서 상식인 기업들은 대부분 이런 사일로가 강한 기업이다.
일부 성공적 기업에도 사일로나 점조직 같은 기업문화가 존재하는 곳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의 경우에도 위기 때에는 상당한 고통을 겪는다. 신속히 일사불란한 대응을 하지 못해 문제를 장기화하면서 점진적 대응으로 초기 관리에 실패한다. 관련 핵심 부서들이 모여 앉아 대응을 함께 논의하게 되면, 당연히 챙겨야 할 것들이 관리된다. 반면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지고 각자 대응에만 몰두하다 보면, 부서 간 협업이 필요한 중간지대에 대한 신경은 덜 쓰게 된다.
위기가 발생한 기업은 외부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외부에서 볼 때 A라는 기업이 무엇을 어떻게 하던 모든 활동은 당연히 A기업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리콜 결정 시기가 늦었다면 A기업이 늦은 것이다. ‘리콜을 한다’면서 제대로 된 소비자 리콜 접수를 어려워하면 그것도 A기업이 준비가 덜 된 것이다. 리콜을 신청했더니 제대로 된 리콜 수리에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면 그것도 A기업의 문제다. 말 그대로 A기업은 엉망이라는 생각을 공중들이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A같은 기업은 내부에서 그 결론에 대해 쉬쉬한다. 마케팅 부서장을 비롯해 CS, 재무, 협력업체관리 부서장들이 정치적으로 곤란한 입장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사후 평가를 상당히 민감해 한다. 외부에서 ‘위기관리가 잘 못 됐다’ 평가해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부 상황을 잘 알지 못해 그런 평가를 하는 것이라 반론한다. 내부에서 어떤 노력과 토론이 있었는지 모르면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아달라 한다. 나름대로 부서들이 최선을 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위기관리 성공의 원인에 대해서는 기업의 내외부가 거의 같은 생각과 판단을 한다는 것을 기억해 보자. 그렇다면 실패의 원인에 대해서도 기업 내외부가 비슷한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이 또한 기업 스스로 또 다른 사일로를 형성하는 것이다. 사회와 기업 간의 사일로다.
필자 정용민은 누구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