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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시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둘러보면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과연 책읽기는 무엇일까. 소설가 김영하가 인터파크도서 주최로 열린 토크콘서트에 참석, ‘이 시대에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화두로 이야기를 열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MERS)가 한창 맹위를 떨치던 10일 이화여대 삼성홀에서다. 기말고사를 앞둔 대학생들은 물론 10대 문학청년, 교사와 학부모 등 500여명의 다양한 독자들은 120분간 김영하 작가의 눈과 귀를 주목했다.
‘독서의 괴로움 그리고 즐거움’을 주제로 열린 특강에서 김 작가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 “우리가 책 읽기의 괴로움을 기꺼이 감당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 작가는 현대와 과거를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과 책과 독서에 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풀어내며 2시간에 걸친 강연을 이어갔다.
◇“고전 흥미롭다..독후감 쓰는 독서교육 문제”
1995년 등단 이후 ‘검은꽃’ ‘살인자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빛의 제국’ 등의 작품으로 사랑받아온 김 작가는 “최근 고전읽기에 빠져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인지 이날 강연에서는 고전 이야기를 많이 꺼냈다. 강연을 집중해서 듣다보니 어린 시절 읽었던 고전을 다시 한 번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독서는 본질적으로 괴로운 일. 진짜 즐거운 일이라면 학교에서 독서교육을 강조할 이유가 없다. 가만히 나둬도 스스로 즐기게 돼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어른들은 권장도서 목록을 만들고 독서를 강요한다. 독서의 괴로움은 남이 읽으라는 책을 억지로 읽게 되기 때문. 요즘 논술이나 입시를 위해 세계명작선집을 읽어야 하는 것도 비슷한 사례다.
물론 책에 따라 다른 양상도 나타난다. 남자는 판타지나 무협소설을, 여자는 로맨스 소설을 읽지 말라고 해도 읽는다. 이는 모험을 좋아하는 남자의 특성과 관계를 중요시하는 여자의 특성이 반영된 것.
다만 너무 어린 나이에 고전를 강요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봤다. 초등학생이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을 이유는 없다는 것. 또 중학생이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나 카프카의 ‘성(城)’을 억지로 읽어선 안된다는 것. 특히 수준과 상황에 맞지 않는 책을 강요하고 억지로 독후감을 쓰게 만드는 독서교육은 문제가 있다는 것. 책은 세밀하게 설계된 정신의 테마파크와 같은데 필독도서, 권장도서라고 하면 힘을 잃고 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강제성은 독서의 본성과 맞지 않는다는 게다.
김 작가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꿈에 빗대어 설명했다. 꿈은 깨고 난 뒤 다음날 이어서 꿀 수 없는데 책은 가능하다는 것. 책은 특히 남과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러한 불온함은 지배자들이 책을 금지한 이유와도 맞닿아있다. 결국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독서를 통해 자아가 분열되고 해체될 것을 예감하면서도 용감하게 책장을 펼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비롯되는 괴로움과 싸우면서도 오히려 즐기는 행위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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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강연에 충격…책읽는 사람 소수될 것”
김 작가의 강연 이후에는 보다 즐거운 시간이 마련됐다. 팟캐스트 ‘책다방’의 진행자 김두식 교수와 함께 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담이 이어진 것. 두 사람의 입심 대결에 독자들은 박장대소했다.
김 작가는 또 과거 습작 시절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 선생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강연 이후 누군가 30분 가까이 질문을 했는데 알고보니 그가 도울 김용옥 교수였다는 것. 질문의 요지는 “예술은 숙련이 필요한데 당신의 작품은 해프닝처럼 보인다. 한 순간의 기발한 발상이 예술인가라는 것”. 백남준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런 걸 어떻게 한마디로 말해. 2박 3일은 걸린다. 다음 질문”
문청을 위한 팁도 내놓았다. 김 작가는 “토니 모리슨을 좋아하는데 그는 자기 서가를 둘러보고 없는 책을 쓰려고 하는데 이는 좋은 작가의 자세”라며 “‘이게 대세네. 나도 써야지’가 아니라 요즘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도 사람들이 쓰지 않은 게 있는 것을 내가 잘 쓸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업작가를 주변에 권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다른 직업을 갖는 것도 바람직하다. 전업작가가 되지 못한다고 해서 위대한 작가가 아닌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전업작가가 된 지 5∼6년밖에 안됐다. 역사적으로 봐도 전업작가는 많지 않다. 카프카는 회계사로 일했고 조세희 선생도 직장에 다닐 때 점심시간을 이용, 다방에서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을 썼다.오정희 선생은 애들 재우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좋은 글을 썼다”며 “전업작가의 비중은 지금도 작다. 전업작가가 되기 위해 스무살에 결단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습작시절의 어려움도 소개했다. 감옥을 다녀오고 민주화투쟁을 했던 선배 작가들에 비하면 자신이 너무 초라해보였다는 것. 작가가 되지 못할 줄 알았는데 PC통신에서 좋은 문우들을 만나면서 큰 힘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김 작가는 의미심장한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책의 운명에 대해 비관적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소수가 될 것이다. 점점 줄어들겠지만 꽤 버틸 것이다. 긍지를 가지고 같이 갔으면 좋겠다. ” 행사가 종료되는 9시까지 자리를 지킨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