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체제 인사들, 수십년만에 남한 땅 밟아"

[노컷인터뷰]박소은 6ㆍ15공동위원회 해외 측 유럽위원장
  • 등록 2005-08-14 오전 11:06:55

    수정 2005-08-14 오전 11:06:55

[노컷뉴스 제공] “50여년의 분단은 물 한 방울 차이”

오는 17일까지 나흘간 열리는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ㆍ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6ㆍ15 공동위원회 해외 측 박소은(58) 유럽위원장과 독일, 스웨덴에 머물고 있는 통일 운동 해외 인사들이 대거 입국, 수십년만에 고국땅의 공기를 호흡하고 있다.



"입국 불허때문에 50년만에 귀국자도 있어

이들은 1974년 독일에서 ‘민주사회건설협의회’(민건) 결성을 통해 반독재, 반유신 투쟁을 벌여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혀 그동안 입국이 불허됐다. 방문단 중 가장 연장자인 이영빈 목사(80)는 무려 50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박소은 위원장은 “당시 독일에 유학 온 젊은 유학생들은 자유분방한 의식을 가졌고, 조국이 분단된 지 10여년 밖에 되지 않아 분단의식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며 당시 동백림사건, 민건 결성 등의 배경을 짐작케 했다.

민건 활동은 이후 반독재 운동에서 통일운동으로 확장돼 그 정신이 90년 ‘조국통일 범민족연합’(범민련) 결성까지 이어졌다. 한국 정부는 이같은 운동을 ‘반체제 활동’으로 규정했고, 그들은 해외에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박 위원장은 28년 만인 지난 2000년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민건 활동 이후 생계ㆍ육아 문제, 반독재ㆍ통일 운동에 대한 성찰 필요 등 개인적 사정으로 운동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래서 그는 운동을 계속해 왔던 통일 운동 인사들과는 달리 비교적 어렵지 않게 입국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모친상을 당해 입국했으며, 고향 대구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장례식을 치렀다.

당시 2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감회에 대해 “예전에 살았던 한국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져 외국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며 “고향이라기보다는 이방처럼 느껴졌다”고 낯설어했던 인상을 전했다.

박 위원장은 “8ㆍ15 민족 대축전행사가 끝나면, 어머니 5주기라 대구에 가서 친척들과 지내고, 친구들도 찾아볼 생각”이라며 국내 체류 계획을 밝혔다.

“6ㆍ15 기념행사가 만남과 행사 위주의 기념식을 넘어서야”

그는 이번 해외 대표단 입국에 대해 “정부가 해외인사는 누구도 선별하지 않고 입국을 허용하는 원칙을 세웠다고 들었다”며 “입국한 인사들은 대체로 8월 말까지 체류할 계획이고, 몇 분은 9월 중에 출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2000년 6ㆍ15 공동선언에 대해 “분단과 통일을 경험한 독일 땅에서 바라본 느낌은 우리도 우리식으로 할 수 있다는 역량을 세계만방에 과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6ㆍ15 유럽공동위는 지난 6월 7일 베를린에서 베를린 한인회(회장 이환도)와 공동으로 ‘6ㆍ 15남북공동선언 5주년 기념 유럽 동포 축전’을 개최한 바 있다.

박 위원장은 이에 대해 “한인회 행사는 늘 대형 태극기를 다는데 이날은 태극기가 아닌 단일기를 걸었던 일이 상징적으로 보여 주듯, 그간의 반목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위해 베를린 동포사회가 통합된 모습을 보여준 감동적인 행사였다”며 회고했다.

그는 6ㆍ15 기념행사에 대해 “이제는 남북간 만남과 행사 위주의 기념식을 넘어서야 하는 단계”라며 “정부가 공동선언 조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책화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정부의 노력을 촉구했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이질적일 것이라는 편견 버려야”

박 위원장은 “남과 북에 사는 사람들의 기질과 정서에 있어 다른 점을 느낄 수가 없다”며 “50여 년 간의 분단은 물 한 방울 차이며, 우리는 이 차이를 극복할 저력을 가졌다”라고 통일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그는 이어 “따라서 해외 인사들은 ‘남도 북도 하나의 조국’이라는 명제를 품고 있는데, 남과 북을 늘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동포사회에서 한쪽을 선택하게 만드는 구조는 비극”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통일운동에 있어 해외 동포의 역할에 대해 박 위원장은 “1990년 남ㆍ북한, 해외동포를 세 축으로 하는 범민련이 결성됐지만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남측은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그 대역을 해외가 담당했다. 그러나 6ㆍ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간 교류가 활발해짐으로써 이제는 해외가 통일운동에서 새로운 역할을 고민해야할 때”라고 밝혔다.

박소은 위원장은 71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 마부르크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던 중 74년 ‘민주사회건설협의회’ 활동을 통해 반독재, 통일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28년간 국내에 들어오지 못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 3월 금강산에서 6ㆍ15 공동위원회가 결성된 후 해외 측 유럽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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