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사과에 유시민 "희소식"..진중권 "朴정권과 뭐가 달라"

  • 등록 2020-09-26 오전 12:54:48

    수정 2020-09-26 오전 1:05:58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이른바 ‘북한의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과에 대해 ‘앙숙’이 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진중권 동양대 전 교수가 다소 다른 반응을 보였다.

먼저 유 이사장은 지난 25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10·4 남북정상선언 13주년 기념 토론회’ 도중 전해진 김 위원장의 사과 소식을 접했다.

그는 “(토론회 시작 때) 이 사건이 남북관계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고 반색하며 “우리가 바라던 것이 일정 부분 진전됐다. 희소식”이라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북한 측의 통지문에 대해 “(제가) 느끼기에는 상당히 민망한데 우리가 잘못했다고 빌기는 그렇고, 앞으로 영 안 볼 사이면 퍼붓고 말겠는데 봐야 할 사이인 것 같으니까 상대방의 화난 감정을 가라앉혀주는 느낌”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통지문에서 ‘사살(추정)되는 사건’이라는 표현에 대해 “이 문장을 쓴 사람의 심리 상태를 보면 이걸로 코너에 몰리기 싫은 것”이라며 “이 선에서 무마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국방부의 ‘만행’ 표현에 북한이 유감을 표한 데 대해서도 “적반하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 이사장은 북측의 통지문이 김 위원장의 이전 북한 지도자들과 달라진 통치 스타일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그는 “김 위원장의 리더십 스타일이 그 이전과는 다르다. 그 이면에 세계관, 역사를 보는 관점 등이 있을 것”이라며 “이 사람이 정말 계몽군주이고, 어떤 변화의 철학과 비전을 가진 사람이 맞는데 입지가 갖는 어려움 때문에 템포 조절을 하는 거냐, 아닌 거냐(질문을 받는데) 제 느낌에는 계몽군주 같다”고 말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 진중권 동양대 전 교수(사진=연합뉴스)
반면 유 이사장과 같은 대표적 ‘진보 논객’이었으나, 이른바 ‘조국 정국’에서 상반된 주장을 펼치며 앙숙이 된 진중권 동양대 전 교수는 “불편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진 전 교수는 이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이번 사태를 ‘반북 이데올로기’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마 민주당 쪽에서 원하는 방향일 거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이념을 떠나서 이 문제를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으로 가장 고통을 받는 이는 아마 유가족일 거다. 세월호 유가족의 입장에 공감하지 못한 것이 박근혜 정권의 문제였다면, 그것을 비판했던 사람들이 정작 이번 사태에서는 사살된 분의 유가족의 입장에 공감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니 북한이 희생자의 장례(‘화장’)를 치러준 것이고, 김정은이 사과를 했으니 ‘희소식’이며, 그분의 희생이 결국 ‘전화위복’이 됐다는 둥 해괴한 소리가 나오는 것”이라며 “한 사람의 죽음 덕에 외려 남북관계가 개선이 됐으니, ‘미안하다. 고맙다’ 대통령이 세월호 방명록에 이렇게 적어 넣을 당시의 그 정서, 거기서 한 치도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여기서 ‘화장’은 방송인 김어준의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김어준은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 이 정도는 알아야 할 아침 뉴스’ 코너에서 북한 피격 공무원에 대한 소식을 다루며 “평상시라면 월북자로 대우받았을 사람인데 코로나19 때문에 바이러스 취급을 받았다”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해상 총살 후 화장을 해버린 것 아니냐”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진 전 교수는 또 다른 글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는데, 하나는 남북관계의 발전 혹은 관리라는 관점, 다른 하나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의 역할 혹은 책임이라는 관점”이라고 짚었다.

그는 “물론 둘 다 중요한 이슈이나, 여기서 근본적인 것은 물론 후자”라며 “어차피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관리도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일 테니까. 전자는 김정은의 이례적인 사과로 최악을 피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도주하려고 해서 사살했다는 북측의 설명은 그리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바다 한가운데서 부유물 붙잡고 어떻게 동력선 따돌리고 도망을 가는가?”라고 의문을 나타냈다.

진 전 교수는 “문제는 후자다. 과연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의무를 얼마나 충실히 수행했는가? 집중적으로 캐물어야 할 것은 바로 이 지점”이라며 “같은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이번 사태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혀, 문책할 사람은 문책하고 사과할 사람은 사과해야 한다. 아울러 재발을 막기 위해 매뉴얼이나 시스템을 앞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이 두 이슈의 중요성에 대한 정권 측 사람들의 평가”라며 “그들은 김정은의 사과가 나오자 입 모아 ‘전화위복’이 됐다고 외친다. 우리 국민의 한 사람이 북한의 비인도적인 조치로 살해당한 불행한 ‘화’가 김정은 사과로 졸지에 ‘복’이 되어버린 거다. 그들의 머릿속의 가치체계 속에서 국민의 생명보다 남북관계가 더 상위에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게 저를 불편하게 만든다. 대체 왜들 저러는지. 과연 지금이 태연히 그런 얘기를 늘어놓을 때인지. 세월호 때 박근혜 정권 사람들과 뭐가 다른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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