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양육비 안준다" 비방글은 벌금, '배드파더스'는 무죄

재판부 "명예훼손 아닌 공익성" 판단
개인 SNS 비방글은 인정 못받아
  • 등록 2020-01-19 오전 8:00:00

    수정 2020-01-19 오전 8:00:00

[이데일리 박한나 기자]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의문을 [왜?] 코너를 통해 풀어봅니다.

이혼한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했다가 재판에 넘겨진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 관계자들에게 15일 무죄가 선고됐다.

(사진= ‘배드파더스’ 웹사이트 갈무리)
2018년 7월부터 ‘배드파더스’ 웹사이트 운영자들은 양육비 미지급자 400여 명의 신상정보를 게재해왔다. 이들은 제보를 받아 양육비 부담조서나 이혼재판 판결문 등 서류를 확인했고 신상이 공개된 당사자가 양육비를 지급하면 정보를 내려줬다.

배드파더스 페이지에 접속하니 얼굴을 명확히 알아볼 수 있는 큼지막한 사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실명, 거주 지역, 출생연도는 물론 직장명도 보인다. 이들이 사회적 질타를 받기 마땅하다고 하더라도 명예훼손 혐의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재판이 시작된 후 배드파더스 내부에서도 무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육비 미지급은 명예훼손 자초한 것”

재판에서 검찰은 “성범죄자 등의 신상도 엄격한 법에 따라 판결로만 공개할 수 있는데 운영자들의 판단만으로 이런 활동은 한 것은 법치주의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며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그러나 15시간 넘게 이어진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고 재판부의 판단도 같았다.

반면 배드파더스 사이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양육비를 주지 않는 전 배우자에 대한 비방 글을 올린 전씨에게는 벌금형이 선고됐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

‘배드파더스’ 활동가 구본창 씨기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한 모습. (사진= JTBC 뉴스룸 캡처)


우선 배드파더스에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공익성’이다. 아이의 생존이 달린 양육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이었다는 구씨 측 주장이 인정된 것이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구씨 측이 사이트 운영을 통해 얻은 이익이 없고, 사이트에 당사자들을 비하하거나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등 모욕적 표현도 없다고 봤다. 또 피해자들 역시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관심 사안이 되면서 스스로 명예훼손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판시했다.

배드파더스에 양육비 미지급 사실을 제보한 전씨의 경우도 신상공개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단 재판부는 전씨가 개인 SNS에 쓴 글에서 “표현 방법과 침해 정도에서 비방의 목적이 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배드파더스’ 웹사이트 안내문. (사진= 배드파더스 웹사이트 캡처)
양육비 법안 10여 개 나왔지만 국회 못 넘어

이번 재판은 이혼한 부부의 자녀 양육비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현행법은 양육비를 공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 간 채무로 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

가정소송법에 따라 재산을 가압류하고 법원에 과태료를 신청하는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는데 소송절차를 밟는 것에는 2년 이상이 소요된다. 2015년부터는 여성가정부 산하 기구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소송 과정을 돕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다.

여성가족부 가족지원과 관계자는 “양육비 관련 법안은 이미 10여 개가 발의된 상태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그나마 이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있지만 다음 단계인 법제사법위원회는 이 문제를 더 소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재판을 계기로 양육비는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생존권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높아지면 국회에서도 움직일 것이라고 기대한다”며 “여가부도 설득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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