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의약품 우선 심사'…이번엔 입법 성공할까

바이오산업 발목잡는 규제들
관련법안 3년 동안 국회서 논의만
통과 땐 개발기간 10→3년 단축
''유전자 검사 항목 제한''도 문제로
  • 등록 2019-05-23 오전 6:00:00

    수정 2019-05-23 오전 6:00:00

[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바이오헬스 산업 발전을 돕겠다’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통령까지 나선 마당에 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가 제대로 지원을 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한 재생의료 기업 대표는 정부가 22일 발표한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책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몰라서 안 풀었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바이오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첨단 재생의료 및 첨단 바이오의약품법 제정이다. 세포·유전자치료제, 줄기세포 등 바이오의약품의 심사와 허가 기간을 단축해 시장에 빨리 선보일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골자로 △희귀질환 환자 치료확대를 위한 바이오의약품 우선 심사 △개발사 맞춤형 단계적 사전 심사 △유효성 입증한 바이오의약품의 조건부 허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10년 넘게 걸리는 유전자 및 세포치료제 개발 기간을 약 3년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환자들로서는 치료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고 개발업체는 개발비용을 줄이면서 매출을 올릴 수 있어 또 다른 치료제 개발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이 법은 2016년 국회에 처음 발의된 후 수 차례 폐기와 재발의를 거쳐 지난 3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의결했다. 하지만 코오롱생명과학(102940)의 인보사 문제가 불거지면서 법사위에서 법률안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업계 대표는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처음 논의가 시작될 때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정도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며 “인보사 사태는 한 기업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업계 전체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동희 식품의약품안전처 기획조정관은 “인보사 사태로 첨단바이오법이 왜 필요한지 명확해졌다”며 “신청부터 인허가까지 제대로 관리했는지를 명확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첨단바이오법이 통과되지 못하면서 이종장기 이식 연구도 벽에 부딪혀 있는 상황이다. 무균돼지에서 각막이나 췌도 등 사람이 쓸 수 있는 장기를 만들어 내는 것인데 정부 프로젝트로 15년간 500억원이 넘는 연구비가 들었다. 하지만 사람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은 올해 연말로 미뤄진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처음부터 완전한 법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일단 법을 만들고 세부적인 내용을 가다듬는 방향이라도 빨리 법이 시행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상시험 단계별로 5년간 장기추척을 해야 하는 것도 바이오산업을 발목잡는 대표적 규제로 꼽는다. 한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업체 대표는 “모든 임상시험 단계에서 5년 장기추적으로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질환 특성에 따라 장기추적 여부를 정해야 하는데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뭉뚱그려 ‘줄기세포치료제’로 묶어 급성질환 치료제도 장기추적을 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고 말했다. 급성질환은 병이 생기면 2~3일 내에 빨리 치료를 하면 완치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망한다. 둘 중 하나다. 이 대표는 “줄기세포치료제로 완치한 뒤 5년 추적관찰 중 암 같은 부작용이 생겼다면 이게 줄기세포치료제의 안전성 문제인지 또 다른 원인인지 따지기 어렵다”며 “밝힐 수 없는 문제지만 불필요한 규제 탓에 기업은 비용이 많이 드는 장기추적관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종 심의위원회 운영도 불합리한 규제로 꼽힌다. 심의위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병원별 윤리위원회(IRB)의 내용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정부가 구성하는 심의위원회에 학계의 의견이 강조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임상시험을 준비 중인 한 업체 대표는 “정부가 위원회를 만들면 위원의 70~80%는 대학의 교수들로 채워지고 산업계 전문가는 구색맞추기 정도에 불과하다”며 “신기술을 바라보는 학계와 산업계의 괴리가 큰 상황에서 업계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잘못된 내용은 제대로 심의해야 하지만 산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편협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며 “이런 얘기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소비자가 직접 의뢰하는 유전자검사’(DTC)도 규제가 발전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현행법상 DTC가 허용되는 유전자 검사는 콜레스테롤, 체질량지수, 혈당, 혈압, 혈당, 탈모 등 12가지 항목에 불과하다. 미국은 알츠하이머치매, 파킨슨병 등을 비롯해 100여개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고 일본은 규제 자체가 법이 아닌 지침에 불과하다. 사실상 규제가 없는 수준인 것. 그러다 보니 시장조사업체 크리던스리서치에 따르면 2014년 656억원 규모이던 전세계 DTC 시장 규모는 2016년 1055억원으로 2년새 61% 커졌다. 2022년에는 4053억원으로 확대될 예정이지만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는 국내 기업의 경쟁력 강화는 요원하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한 유전자 분석업체 관계자는 “외국은 유전자분석으로 암 위험도 미리 알아 대처하는 수준”이라며 “국내 DTC 업체가 이를 못 하는 이유는 기술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규제가 이를 가로막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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