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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문화계에 불고 있는 ‘미투’ 운동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공개 사과까지 했지만 진정성이 부족한 사과 내용으로 연극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윤택 연출이 부인한 성폭행에 대한 추가 폭로까지 등장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
◇성폭행으로 임신·낙태 고발까지
전 연희단거리패의 단원인 김지현 씨는 19일 이윤택 연출의 기자회견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윤택 연출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추가로 폭로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한 김지현 씨는 “많은 분들의 증언처럼 황토방이란 곳에서 여자 단원들이 밤마다 돌아가며 안마를 했고 저도 함께 했다”고 밝혔다.
이윤택 연출의 성폭행으로 임신과 낙태까지 했다는 충격적인 고백도 털어놨다. 김지현 씨는 “안마를 할 때 성폭행을 당해 2005년 임신을 했고 제일 친한 선배에 말씀을 드려 조욕히 낙태를 했다”며 “낙태 사실을 안 이윤택 선생이 200만원인가를 건내며 미안하다고 말씀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후 얼마간은 저를 건드리지 않으셨지만 그 사건이 잊혀져갈 때쯤 다시 성폭행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연극계는 이같은 이윤택 연출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며 더욱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이윤택 연출의 성범죄를 최초로 고발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성관계였다고 말하는 그 입에 똥물을 부어주고 싶다”면서 “기자회견장에서 자수를 한 샘이다. 다음 수순을 밟을테니 감옥갈 준비나 하길 바란다”고 강하게 분노했다.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는 “성행위는 있었지만 성폭행이 아니라는 말로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했다”면서 “원하는대로 법대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연극평론가는 “이건 사과가 아닌 성폭행 고발을 부인하기 위한 기자회견”이라며 “그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김지현 씨도 취재진과 함께 있었다. 김지현 씨는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모든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 것이라고 그래서 제가 받은 상처도 치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에서 (기자회견장을) 갔다”며 “성폭행 부분에서 강제성이 없었다는 말씀에 기자회견장을 뛰쳐나올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용부·변희석도 논란 휘말려
밀양연극촌장인 인간문화재 하용부 씨도 성폭행에 가담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 연극·뮤지컬 갤러리를 통해 이윤택 연출의 성폭행 의혹을 처음 고발한 김보리(가명)씨는 19일 새벽 두 번째로 올린 글을 통해 “2001년 여름 하용부 씨에게 연극촌 근처 천막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용부 씨는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채 19일 출연 예정이던 2018 평창문화올림픽 공연에 불참했다.
연극계를 넘어 뮤지컬계에도 ‘미투’ 운동이 일고 있다. 이날 디씨인사이드 연극·뮤지컬 갤러리에는 대형 뮤지컬 ‘시라노’ ‘타이타닉’ 등에 참여한 변희석 음악감독이 여성 단원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에 대해 변희석 음악감독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는 마음”이라며 사과했다.
이번 사태는 예술이라는 미명 아래 성범죄까지 묵인해온 문화예술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드러난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객들도 피해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와 트위터를 중심으로 관객들이 직접 나서 공연계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가해자에 대한 비판과 처벌을 촉구하기 위한 집회를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