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서중석 원장 “국과수 존재 이유는 진실 규명"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인터뷰
91년 국과수 입사 이래 1만건 넘게 부검
"시신 토막사건 많아져 황폐화된 사회 안타까워"
  • 등록 2016-04-04 오전 6:00:00

    수정 2016-04-04 오전 6:00:00

[원주=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평택에서 학대로 사망한 신원영군 부검 때 보니 얼굴과 몸 곳곳에 학대로 인한 상흔이 있더군요. 자기중심적 사고가 만연한 우리나라 상황으로 볼 때 아동학대는 더 늘어날 겁니다.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합니다.”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이지현 기자)
서중석(59)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원장은 아동학대는 언제 어디서든 재발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오는 아동학대 사건은 경악 그 자체다. 정부는 부모교육 강화를 골자로 한 아동학대 방지 대책을 꺼내 들었지만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강원도 원주시 국과수 원장실에서 한국판 과학수사대(CSI)의 수장인 서 원장을 인터뷰했다. 서 원장은 중앙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1년 국과수에 발을 들인 이래 1만 건 이상 부검을 한 우리나라 대표 법의학자 중 한 명이다.

“아이가 대소변 가릴 때 학대 시작 사례 많아”

서 원장은 “아이가 대소변을 가릴 나이가 됐을 때 본격적으로 학대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친모가 4세 여아를 욕조 물속에 강제로 집어넣어 사망에 이른 청주 아동학대 사건이나 계모가 락스를 들어부어 학대한 신원영군 사건 등 적지 않은 아동학대 사건들이 아이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벌어진다. 법의학에서는 학대를 크게 4가지로 구분한다. 단순유기와 육체적 학대, 정신적 학대, 성적 학대다.

서 원장은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가 부모의 손길이 필요로 하게 되면 ‘원치 않는 아이였다’는 마음이 폭력으로 드러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뉴스에 아동학대 사건 보도가 이어지면 잠시 잠잠할 수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고도성장기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자란 이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여유가 없습니다. 자신의 아이마저도 짐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과수 원장실 한켠에는 성폭력피해아동 쉼터인 ‘샘터’ 모금함이 놓여있다. 직원들이 오며가며 소액 기부금을 넣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일정 규모가 모이면 서 원장은 이를 매칭해 2배로 기부한다. (사진=이지현 기자)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잠재적인 아동학대 위험에 노출된 아동들이 곳곳에 있는 만큼 언제든 아동학대 사건은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인성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미래 부모세대인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부모가 되기 위한 인성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서 원장은 경기도 부천에서 발생한 ‘초등생 아들 시신 훼손 사건’과 같이 최근 들어 시신을 훼손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2012년에 발생한 오원춘 사건이 결정적이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상세한 언론보도가 잠재적인 범죄자들에겐 학습자료가 된 겁니다. 과거만 해도 시신을 물에 빠뜨리거나 불에 그슬리는 수준이었지만 요즘은 토막사건이 많아졌습니다.”

서 원장은 법의학자로서 죽은 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사라진 세상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다.

“국과수의 책무는 진실을 밝히는 것”

그는 중앙대 의대에서 병리학을 전공한 뒤 지방대행을 피하기 위해 1991년 국과수에 들어갔다. “사익을 위해 법의학을 시작한 셈이지요. 25년을 열심히 하다 보니 저 자신을 위해 걸어온 길이 국민을 위한 일이 되더군요.”

처음 국과수에 발을 디딜 때만 해도 잠시 거쳐 갈 요량이었다. 하지만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 2006년 서래마을 프랑스인 영아살해사건,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굵직한 사건을 거치다 보니 어느 새 국과수 수장에 올랐다.

서 원장은 “국과수의 존재 이유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 하나 뿐”이라고 강조했다.

서래마을 프랑스인 영아살해사건 때 DNA 검사를 통해 하루 만에 냉동실에 유기한 영아 시신 2구가 모두 프랑스인 부부의 자녀라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부부가 설마 자기 아이를 그렇게 유기했겠느냐는 사회적 편견 탓에 국과수 발표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현장에서 촬영된 사진 등을 모두 확보한 뒤 분석한 결과 사고가 아닌 조준사격이었음을 밝혀냈다. “당시에 촬영된 모든 사진을 모아서 시간대별로 분석하고 거리와 각도까지 재면서 분석에 매달렸습니다. 진실은 달라질 수 없습니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은 제기되는 의혹도 많다. 2년 전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은 아직도 ‘해외 휴양지에서 봤다’는 식의 생존설이 나돈다. 서 원장은 이런 의혹에 대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제 키와 변사체의 키가 달랐던 건 뒤늦게 발견된 목뼈 때문이었습니다. 목뼈 7개 중 3개가 빠진 상태에서 키가 측정됐고 이 과정에서 실제 키와 차이가 난 겁니다. 이복형제 시신이기 때문에 DNA가 같을 수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계로 전달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발견된 시신과 일치했습니다. 이건 변사체가 이복형제일 수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외압 의혹도 그래요. 부검 당시 집도의 부집도의 등 의사들만 10명이 들어갔습니다. 10명의 입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서중석 원장은 국과수를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힘’을 실현시키는 곳이라고 소개했다.(사진=이지현 기자)
◇이름없는 시신 신원확인 기술 세계 최고수준


1955년 내무부 소속기관으로 발족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201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격상됐다. 올해 창립 61년째를 맞은 현재는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 5개 지방과학연구소를 두고 있다.

초창기에는 지문 감별이 전부였지만, 현재는 개인식별, 유전자·마약감정, 디지털 분석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름 없이 숨진 이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개인식별 기술은 세계에서도 손꼽힌다. 신원을 확인하기 힘든 시신들이 많은 현실 탓에 개인식별 기술이 세계적 수준까지 올라섰다는 서글픈 설명이다.

그가 2012년 7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제2대 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국과수는 달라지고 있다. 2013년 11월 국과수 본원이 강원도 원주로 이전했다. 2017년에는 최첨단 부검실이 문을 열 계획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등과 같은 감염병 환자는 그동안 부검하지 못했습니다. 2차 감염 우려 때문입니다. 내년에 최첨단 특수부검실이 완공되면 실력뿐만 아니라 시스템까지 세계 최고수준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디지털 분석과도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 개발한 거짓말 탐지기의 경우 오류확률이 ‘0’에 가깝다.

“현재 수사과정에서 활용되는 거짓말 탐지기는 오류가 잦아 법적 증거물로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개발한 거짓말탐지기는 오류가 적어 법적 증거물로 채택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현장에서 활용한다면 숨겨진 사건의 진실을 찾는 일이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요?”

이 외에도 108개국 여권정보를 확보해 어느 나라 여권이든 위·변조 여부를 알 수 있는 여권위·변조 검증시스템을 개발한 데 이어 삭제된 영상을 복구하는 프로그램 동영상이나 사진 등을 확대해도 해상도가 유지되는 프로그램 등 다양한 기술개발을 위해 노력 중이다. 일부 기술은 국제특허를 받기도 했다. “국과수는 무결점 감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국과수가 항상 있습니다. 국민의 억울함을 보듬어 주는 최후의 기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중석 원장은 과학수사분야로의 진출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특별히 깊은 지식은 필요치 않다. 자신의 전공을 열심히 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문은 열려있다. 도전해 보라!”고 말했다.(사진=이지현 기자)
●서중석 국과수 원장은

전남 여수 태생으로 서울 양정고와 중앙대를 졸업한 뒤 중앙대 대학원에서 의학박사를 받았다.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연구원으로 시작해 25년째 국과수에 몸담고 있다. 아시아법과학회 회장, 세계과학학술대전(WFF 2014) 의장, 대한법의학회 회장, 감식연구회 회장, 법과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고려대·경찰대 외래교수를 맡고 있다. 2009년에는 우리나라 법의학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61회 과학수사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 2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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