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찬의 뉴스쏙] 'ELS' 포커판, 누구와 내기를 하나

  • 등록 2015-06-06 오전 6:00:00

    수정 2015-06-06 오전 6:00:00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지난달 28일 대법원이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낸 소송에서 증권사의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법원은 증권사가 약속한 상환금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판결문을 잘 읽어 보면, 증권사가 주가를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결론을 내린 건 아닙니다. 그런데도 증권사에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였다는 걸까요?

당시 사건을 다시 설명을 드리면 KDB대우증권이 지난 2005년에 삼성SDI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상품을 팔았는데요, 가입시점보다 주가가 오르면 최대 27%(3년만기, 연 9%)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상품이었습니다.

그 해 11월이 중간평가 시점이 돌아왔는데, 당시에 삼성SDI의 주가는 기준가격보다 500원 정도 높았거든요. 장 마감 8분 전까지 그랬으니까, 8분만 버티면 일단 9%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우증권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SDI 주식을 집중적으로 팔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주가는 미끄러졌고, 투자자들은 30% 정도의 원금 손실이 발생하게 됩니다.

투자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이 대우증권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의도적으로 주가를 떨어뜨렸다는 의혹을 제기한 겁니다. 1심과 2심에서는 법원이 증권사의 손을 들어줬거든요. 그런데 대법원에서 증권사가 손해를 물어줘야 한다고 판결을 뒤집은 겁니다.

모든 투자상품이 그렇듯 ELS라는 상품으로 투자자가 이익을 봤다면누군가는 손해를 봐야합니다. 당연히 증권사도 손해를 볼 수 있겠죠? 그래서 ELS를 판매한 증권사는 ELS 관련 종목을 사서 보유하거나 그 ELS 상품구조를 다른 곳에 파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회피합니다. 이런 걸 ‘헤지(hedge)’라고 합니다.

대우증권의 경우는 자기가 직접 삼성SDI 주식을 보유하는 방식으로 헤지를 한 경우입니다.(좀 어려운 전문용어로 ‘델타 헤지(Delta hedge)’라고 부릅니다.) 주가가 올라서 ELS 고객들에게 수익을 내주더라도, 자신들이 보유한 종목의 주가가 오르니까 손해가 상쇄될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겁니다.

그런데 증권사 입장에서는 ELS를 판 돈으로 그 종목을 보유하고 있었던 거니까, 만기가 되면 보유하고 있던 종목을 다시 팔아야 ELS에 투자한 고객에게 돌려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ELS는 만기가 되면 기초자산이 되는 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위험이 놓이게 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원래 ELS라는 상품이 그런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대우증권의 경우는 자신이 직접 삼성SDI 주식을 보유하면서 헤지를 한 경우잖아요? 이 경우는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만약 증권사가 제3자에게 그 상품 구조를 팔아서 헤지를 한 경우라면 증권사는 수수료만 먹는 상황이 되니까, ELS 투자자는, 누군지 알 수 없지만, 그 ELS 상품구조를 증권사에서 산 익명의 누군가와 주가를 놓고 내기를 하는 셈이 되는 겁니다.

이건 마치 포커 칠 때 딜러(증권사)는 수수료만 받고 카드만 나눠주고 실제로 게임은 딜러가 아니라 옆 자리의 누군가와 게임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증권사가 직접 헤지를 하게 되면, 딜러와 손님이 1대1로 게임을 하는 셈이 되는 겁니다. 증권사는 투자자가 이익을 보면 자신들은 손해보는 관계가 되는 거죠. 그러면 자신의 돈을 뺏기지 않기 위해 일부러 보유 주식을 더 판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 있는 겁니다.

대법원이 지적한 건 결국 이 부분입니다. ELS의 특성상 증권사가 불가피한 위험 관리 거래(헤지)를 한 점을 인정하더라도, 증권사가 투자자와 이해상충의 상황이 불가피한 경우라면, 즉 증권사와 투자자가 직접 주가를 두고 내기는 하게 된 경우에는 증권사가 투자자의 이익을 먼저 보호해야 한다는 겁니다.

요즘 시중금리가 하도 낮으니까 ‘중위험 중수익’ 상품으로 알려진 ELS에 투자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특히 개별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는 사실은 수익은 고정돼 있고 손실이 나면 굉장히 크게 날 수 있는 파생상품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고위험 중수익’ 상품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ELS, 조금 이해가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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