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경 주짐바브웨대사]‘흑백 요리사’ 인기가 대단하다. 무명의 흑색 요리사가 유명한 백색 요리사를 음식으로 이기는 반전이 시청자를 짜릿하게 한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심사위원은 자신의 눈을 가리기도 했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입으로 느끼는 ‘맛’에만 집중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눈을 가리면 알 수 없는 것이 훨씬 많다. 눈을 크게 떠야만 보이는 것들이 많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남부 아프리카의 세 나라 짐바브웨, 말라위, 잠비아에 관한 이야기이다.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국경에는 빅토리아 폭포가 있다. 세계 3대 폭포로 꼽힌다. 사실 눈을 감아도 빅토리아 폭포와 비슷한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이미 맘속에 웅장한 폭포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 속에 3대 폭포라는 거대한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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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00조달러’ 지폐, 독재자 ‘무가베’로 들어가면 이제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짐바브웨를 아직도 100조달러 지폐를 사용하는 나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짐바브웨에서 100조달러 지폐는 2008년 전후 6개월여 정도만 통용됐다. 현재도 금융정책에 어려움은 겪고 있으나 조롱거리가 될 100조 달러 지폐의 국가는 아니다. 그리고 무가베를 장기집권 독재자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짐바브웨 국민 역시 2017년 무가베가 물러날 즈음 그에 대한 실망감이 컸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은 그를 독립과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한다. 백인 지배에 길들어 있던 흑인 국민에게 자신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는 데 고마워한다.
짐바브웨는 광물의 나라이기도 하다. 짐바브웨 경제에서 광물의 비중은 총수출의 60%, 국내총생산(GDP)의 15% 정도로 중요하다. 특히 최근 들어 짐바브웨의 리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짐바브웨 리튬 생산량은 전 세계 6위, 아프리카 최대 규모다.
잠비아는 코로나19 이후 2020년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국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국가라는 오명을 지게 됐다. 그렇지만 2021년 출범한 신정부는 강력한 반부패, 개혁을 외치면서 최근 대외채무에 대한 구조조정까지 마무리하고 있다. 잠비아도 광물의 나라다. 구리가 유명하다. 2022년 기준 구리가 잠비아 전체 수출의 70%를 차지했고 2023년 70만t의 구리를 생산했다. 전 세계 7위 규모다.
말라위는 내년이면 한국과 수교한 지 60년이 되는 나라다. 전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국가 중 하나다. 의외다 싶겠지만 말라위 호수와 말라위 커피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녔다. 말라위 호수는 우리의 경상남북도 전체 면적에 달한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말라위 호수에서 휴식을 즐기는 해외 관광객이 코로나 이전 100만 명에 달했다. 또한 말라위 커피는 아라비카 단일 종류인데, 산미가 적고 초콜릿 향의 느낌이 기분 좋게 난다. 커피 마니아층에게 잘 알려진 덕분인지 스타벅스 리저브에서 판매하는 커피 가운데는 말라위에서 생산된 커피 원두도 포함돼 있다.
선입견을 버리기 위해 눈을 감아야 할 때가 있지만,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할 때도 있다. 최대한 진실에 가까이 가는 길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관계’는 서로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이해의 바탕에서 지속할 수 있다. 기업의 수익을 다루는 사업 분야에서나 국익을 다루는 외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