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작가 타이틀에 가려진 예술 열정"…화가 임군홍을 아시나요

개인전 '화가 임군홍'
가족들 보관해 온 120여점 선보여
과감한 구도·색채 인상적
9월 26일까지 예화랑
  • 등록 2023-08-08 오전 5:30:00

    수정 2023-08-17 오전 9:24:59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월북 작가’로만 알려진 임군홍(1912~1979)은 한국미술사에서는 낯선 이름이다. 그는 커다란 캔버스에 가족들을 그리던 중 홀연히 사라졌다. 아내의 뱃속에는 6개월 된 딸도 있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기 보름 전부터 국전에 출품하기 위해 가족을 그리다가 북한에 끌려간 것이다. 이후 그는 30년간 ‘잊힌 화가’가 됐다.

서울 종로 관수동 125번지에서 출생한 임군홍은 16세에 서울 주교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치과기공사가 된 것을 계기로 후에 치과병원 간호사였던 부인 홍우순을 만나 결혼했다. 1928년 경성양화연구소에 다니며 미술 수업을 받았고 이후 조선미술전람회 등 다수의 전람회에 입선하며 미술가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일제강점기에 중국을 오가며 그림을 그리던 그는 광복과 함께 1946년 서울로 돌아와 광고 미술사를 개업했다. 1948년 운수부 홍보 달력에 탈북 무용가 최승희의 그림을 실었다는 이유로 투옥되기도 했다.

그의 아내는 남겨진 다섯명의 자식과 시어머니, 시아주버니까지 혼자 부양해야 했다. 시장 좌판부터 시작하며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세살 때 아버지와 헤어진 차남 임덕진(75) 씨는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아버지가 남겨놓은 그림들을 보고 아버지를 추억할 뿐이다.

화가 임군홍(사진=예화랑).
정전 70주년을 기념해 화가 임군홍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의미있는 전시가 열린다. 오는 9월 26일까지 서울 강남구 예화랑에서 개최하는 대규모 개인전 ‘화가 임군홍’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가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1930~1950년대 임 작가의 작품 120여점을 선보인다. 김방은 예화랑 대표는 “지난해 신문을 통해 우연히 임군홍을 알게 됐다”며 “만약 임군홍이 북에 가지 않았더라면 위대한 예술가로 기억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독학으로 일군 화풍이 미술사적으로 재평가되고 기려야 할 작가라는 생각에 전시를 열게 됐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임군홍은 일제강점기라는 억압된 시대에도 중국과 일본 등을 오가며 본인만의 작품세계를 펼쳤다. 비록 월북 화가라는 낙인 때문에 오랜 세월 조명받지 못했지만, 임 작가의 작품들은 과감한 구도와 색채가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꽃이 만발한 정원에 앉아 있는 여인을 그린 ‘모델’이 대표적이다. 속옷처럼 짧은 치마를 입고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은 색채가 화려하고 도발적이다. 보라색 배경에 중국풍 원피스를 입은 여인을 그린 ‘북평낭’에서는 자신감 있고 자유로운 붓 터치가 두드러진다. 1940년대 거주했던 중국 한커우와 베이징의 풍경은 여러 개의 작품으로 남아있다.

임군홍의 ‘모델’(사진=국립현대미술관).
임 작가는 가족을 자주 모델로 삼았다. 임신한 아내와 큰딸, 작은아들을 담은 ‘가족’은 그가 남한에서 그린 마지막 작품이자 미완성작이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갓난아기가 바로 아들 임덕진 씨다. 임 씨는 “아버지가 떠난 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집을 팔고 이사 나올 때까지 이젤 위에 그대로 놓여있던 그림”이라며 “어머니처럼 내 품에서 절대 놓고 싶지 않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옥고를 치르고 나온 뒤에는 ‘자화상’과 ‘새장 속의 새’를 그렸다. ‘자화상’에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뇌와 허무, 쓸쓸함이 느껴진다. ‘새장 속의 새’는 자신의 처지를 새장에 갇힌 새로 비유해 자유롭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임군홍의 ‘가족’. 오른쪽에 어머니가 안고 있는 갓난 아기가 차남 임덕진씨다(사진=예화랑).
임군홍의 ‘새장속의 새’(사진=예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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