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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재투표가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에 이어 지난 5월 ‘간호법 제정안’까지 폐기됐다. 해당 법안은 처음부터 부결되는 것이 기정사실이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재의를 요구한 법안의 경우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라는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회의 입법권은 여야의 샅바 싸움 수단으로 전락했다. 앞으로 이 같은 ‘거야 강행-대통령 거부권’ 시나리오가 10여 차례 더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학자금 무이자 대출법 △방송법 △노란봉투법 등의 법안 처리 과정에서도 앞선 악순환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사실상 여당으로선 받을 수 없는 법인 걸 알면서도 야당은 강행하고 있다”며 또 다른 정쟁을 예고했다.
실질적인 법안 논의가 사라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선 사전 입법영향분석 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입법영향분석으로 예상 결과가 공유된 상태에서 법안이 논의된다면 거부권 사태로 일어날 사회적 비용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선 여야의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또한 입법영향분석이 대통령의 거부권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브레이크 장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사전 논의된 법안이라면 대통령도 막무가내로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며 “무한 정쟁을 막을 수 있는 요소가 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입법 전 단계부터 ‘결과를 못 믿겠다’는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며 “여야가 의회 정치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함께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