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경색’ ‘돈맥경화’ 등 지난해 자금시장을 수식했던 표현들이 무색하게 올들어 채권시장은 훈풍을 넘어 과열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뜨겁다. 국공채부터 시작된 금리하락은 특수채, 여전채, 우량 회사채로까지 이어졌고 이제 비우량채로까지 확산하는 분위기다. 각국의 금리인상 기조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 가운데 연초 기관투자자들의 자금 집행이 시작된 게 주효했다. 기관이 담지 않는 비우량 회사채로까지 온기가 퍼진 데에는 채권개미의 역할도 상당했다.
주식시장은 여전히 박스권에서 맴돌고 있고 예금과 적금 금리가 하락세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예금 금리 이상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투자처로 채권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비우량채에 대한 채권개미의 관심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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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개인 투자자들의 채권 순매수 규모는 전날까지 4조2877억원을 기록하면서 4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 순매수 규모가 4930억원에 그쳤던 것과 비교할 때 약 9배 늘어난 수준이다. 채권 개인투자자 순매수 규모는 이미 지난해 20조6113억원을 기록하면서 전년(4조5675억원)보다 4배 이상 늘었다. 이런 증가 속도라면 올해도 지난해 기록을 가뿐하게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 투자자들의 채권 시장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 ‘완판’ 행진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발행에 나섰던 신한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에는 8580억원의 자금이 몰려들었다. 이어 KB금융지주의 신종자본증권에는 9440억원, 우리금융지주는 7850억원, 하나금융지주 역시 9900억원이 몰렸다.
신종자본증권이 이렇게 ‘없어서 못팔’ 정도의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금리 때문이다. 신종자본증권은 선순위채·후순위채보다 변제 순위가 더 뒤다. 그렇기때문에 높은 금리로 발행된다.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기관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면 원금이 상각될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지만 금융지주의 경우 이럴 확률이 높지 않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더욱 높다.
‘오늘 금리가 내일 금리보다 높다’…절세 매력까지
금리가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 역시 개인 투자자들을 채권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예금과 적금 금리가 3% 수준까지 내려온 상황에서 4%대 금리를 확보할 수 있는 우량채는 매력적인 투자처다. 금리와 가격이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 특성상 현재 금리가 고점이라고 가정할 경우 당장 이자수익은 물론 향후 채권 가격 상승에 따른 채권 매매수익까지 덤으로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이 기본적으로 주식보다 안정적인 성격이라는 점도 매력 요인으로 꼽힌다. 채권은 정해진 기간마다 주기적으로 이자를 지급하기 때문에 수익률을 예측하기가 주식보다 훨씬 수월하다. 발행 기관이 부도가 나지만 않는다면 만기까지 보유하고 있기만 해도 정해진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한 대형 증권사 PB는 “작년 5~6%까지 금리가 나오던 채권 투자를 놓친 대기 수요가 4%대 금리 채권이 시장에 나오는 족족 사들이고 있다”면서 “‘오늘 금리가 내일 금리보다 높을 수 있다’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신용도가 A급 이하인 회사채는 기관 입장에서는 등급강등 리스크나 가격하락 위험 때문에 담지 않지만 만기까지 보유하면서 이자수익을 얻겠다는 개인투자자들은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6~7%대 이자율이 꽤 쏠쏠하다고 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세금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이 2년 유에되면서 채권 관련 세금 제도 역시 이 기간동안 동일하게 적용된다. 현재 채권을 직접 투자할 경우 이에 따른 매매 차익은 과세를 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표면금리가 낮은 시기에 발행된 채권의 인기가 높다. 표면금리에 대해서 이자소득이 과세되는 특성 때문이다. 한 증권사 PB는 “예를 들어 표면금리가 1.5%인 채권을 지금 시점에서 금리 4%에 산다면 이자를 400만원 받더라도 과표는 150만원만 잡히게 된다”면서 “결국 고액자산가들에게는 6%짜리 채권이 되는 셈이다보니 이런 채권들이 인기가 상당하다”고 전했다.
금리가 정점을 찍었다는 전망이 우세한만큼 당분간 채권 인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다만 지난해 채권 시장 자금 경색을 불러왔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려가 여전한데다 개인 투자자들이 높은 금리를 주는 비우량채를 선호하는 경향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개인 투자자들은 신용등급보다는 본인에게 익숙한 기업인지 ‘간판’을 보고 채권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BBB등급 채권의 경우 아예 취급하지 않는 증권사도 있는만큼 신중히 고려하고 투자해야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