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③日, 사도광산 세계유산 재추진…"역사 왜곡 대응 필요"

갱내 험한 일은 조선인 담당
전방위적 대응 체계 마련 필요
"아름다운 일본 되려면 먼저 당당해야"
  • 등록 2022-09-26 오전 5:32:00

    수정 2022-09-26 오전 8:16:31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사도광산처럼 일본이 역사 왜곡을 하는 사례는 계속해서 나올 거예요. 또 다른 도발에 대비해 전방위적인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사도광산에서 일했던 피해자들은 진폐증(석탄가루가 수년에 걸쳐 폐 조직에 쌓이면서 호흡 곤란이 생기는 질환)으로 고생하다 피를 토하며 죽었다. 가족들은 생전 아버지가 혹은 아들이 후유증을 겪으며 고통 속에 살았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한다.

하지만 가해자였던 일본은 사과는커녕 강제 노역의 현장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월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처음 추천했지만, 유네스코는 일본이 제출한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심사를 보류했다. 사도광산을 구성하는 유적 중 하나인 니시미카와사 금산에서 과거에 사금을 채취할 때 사용된 도수로(물을 끌어들이는 길) 중 끊겨 있는 부분에 관한 설명이 없다고 지적한 것이다.

최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지적 사항을 보완한 세계문화유산 잠정 추천서를 오는 29일 또다시 유네스코에 제출할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말까지가 제출 기한인 잠정 추천서는 정식 추천서를 제출하기 전까지 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 내년 2월까지 정식 등록 추천서 제출을 준비한 뒤 2024년 여름 세계유산 정식 등록을 노린다는 게 일본의 계획이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은 최근 인천시 부평구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일본이 강제성이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공개한 사료를 세세하게 살펴보면 오히려 얼마나 불합리했는가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운반이나 채굴 등 갱내에서 험한 일은 대부분 조선인이 담당했다”며 “강제성은 없었다지만 사료의 앞 부분에는 우리가 ‘동원’했다고도 나와 있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정혜경 위원은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이 돼서 교과서에 실리면 역사 왜곡의 현장이 한층 넓어지는 것”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왜곡이 줄어야 하는데 더 많아지는 기현상을 맞이하게 된다”고 말했다(사진=이윤정 기자).
사도광산 황금기는 ‘일제 강점기’

정 위원은 2019년 발표한 사도광산 조사보고서를 통해 광산 내 담배 공급업자와 조선총독부가 각각 작성한 ‘조선인연초배급명부’ ‘지정연령자연명부’를 처음 공개했다. 조선인 징용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근무시기가 적힌 배급명부에는 1943~1945년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피해자 463명의 명단이 들어있다.

최근 일본 ‘역사인식문제연구회’가 공개한 ‘사도광산사’ 자료도 분석한 결과 사도광산의 황금기는 ‘일제강점기’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일본은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추천 자료에 대상 기간을 ‘센고쿠 시대(1467∼1590년) 말부터 에도시대(1603∼1867년)’로 한정해 세계 최대 금 생산지였다는 점만 부각시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정 위원은 “사도광산사의 844쪽과 846쪽을 보면 사도광산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기는 에도시기가 아니라 일본 근대시기”라며 “해당 자료에서는 조선인을 동원했던 1940년에 생산 신기록을 달성했다고 기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사도광산의 발전은 금맥이 발견된 창생기, 발전기, 전성기, 쇠락기의 4단계로 봅니다. 일본에서 등재하려는건 ‘발전기’에 해당하는 단계인데 전체적인 맥락에서 봐야지 일부만 잘라서 유산으로 내놓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아베 전 총리가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사도광산사’ 845쪽에는 매년 동원된 조선인의 숫자가 정확하게 써 있다. 정 위원은 “1945년 폐전 당시에는 1519명을 동원했다고 정확하게 숫자가 나왔다”며 “이 중 한국으로 배를 태워서 보낸 사람은 1096명인데, 500여명 차이가 나는 것은 중간에 사망하거나 탈출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북 연대 필요…당당한 일본 돼야”

일본이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려는 배경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요시다 쇼인(일본 근대화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는 인물)부터 이어져 내려온 극우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란 것이다.

정 위원은 “일본 우익들에게는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지 여부는 크게 상관이 없을 것”이라며 “자신들의 정치적 필요에 의한 프로파간다(정치 선전)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정 위원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식민지 시기 재일 한인의 노동운동사를 주제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전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서 11년간 조사과장으로 일하며 수천명의 피해자들을 마주하기도 했다.

“직접 마주한 피해자들의 삶은 더욱 안타까웠어요. 진폐증을 앓아 생업을 전혀 할 수 없었고, 자주 피를 토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도 있었죠. 제가 조사를 하던 당시만 해도 34명의 피해자가 살아 있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생존해있는지 파악조차 안됩니다.”

정 위원은 사도광산뿐 아니라 강제동원 문제 전반에 대해 체제를 갖추고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제기록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해서 전 세계인이 볼 수 있도록 디지털 아카이브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정 위원은 “일본으로 인한 피해에 있어서는 남북한이 정치를 벗어나 공동조사를 해야한다”며 “끊임없이 가해사실 인정하지 않고 숨어있는데, 아름다운 일본이 되려면 당당한 일본이 먼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혜경 위원이 ‘사도광산사’ 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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