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요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들떠 있다. 경제 컨트롤타워를 맡은 김동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전경련을 만나겠다고 한 말 한마디 때문이다.
김 부총리는 지난 26일 전경련을 거론하면서 “지난번에 한번 만나려고 했다가 일정 맞지 않았다. 휴가철이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같이 의논하고 시간을 조율해서 만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제부총리가 경제단체를 만나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 싶지만, 전경련과의 만남은 의미가 다르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돼 있는 전경련은 ‘적폐’ 단체란 꼬리표가 붙어 있다. 문재인 정부와의 소통이 사실상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교류가 없었다.
이후 전경련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취임 후 문 대통령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쓴 일자리위원회 유관기관에도 전경련의 이름은 빠졌다. 대한상의와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의 이름만 올라 있었다.
전경련 관계자는 “전경련 패싱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 현실”이라며 “정부와의 교류가 없고 배제되는 것 때문에 경제단체로 힘들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가 전경련을 만나겠다는 말은 전경련을 경제운용의 한 파트너로 삼겠다는 말과 같다. 전경련 패싱은 더 이상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 부총리의 전경련 방문 일정이 아직 구체적으로 잡히지는 않았다. 전경련은 “조만간 연락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에 초점을 맞추던 정부는 갈수록 나빠지는 일자리와 저조한 성장이라는 걸림돌에 부딛혔다. 최저임금을 올려 소비를 늘리고 내수 경기를 살리려는 계획도 부작용이 먼저 부각됐다. 기존의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기업의 도움이 급해졌다. 정부는 대기업을 대변하는 전경련과 손을 잡을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국제적으로 무역전쟁이 첨예한 상황에서 전경련의 폭넓은 해외네트워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경련은 한미재계회의 등 31개국 32개의 경제협력위원회를 통해 해외 주요국과 교류할 정도로 네트워크가 탄탄하다. 올해만 해도 미국의 윌버 로스 상무장관, 오린 해치 상원 재무뮈원장 등에게 철강 수입제재 완화를 위한 서한발송 등 굵직한 현안에 민간외교 역량을 발휘했다.
7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이후 확실히 정부의 기류가 달라졌다.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일자리와 투자를 늘려 달라고 당부했고,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문 대통령을 맞은 이 부회장은 “열심히 하겠다”고 화답했다. 삼성은 내달 초 김 부총리의 삼성 반도체 공장 방문 때도 이 부회장이 직접 나가 영접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김 부총리가 전경련을 만난다고 밝힌 건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만난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라며 “정부가 대기업을 보는 시각이 확실히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