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서가]내 인생의 변곡점이 된 책 '진보와 빈곤'

  • 등록 2016-03-23 오전 5:30:00

    수정 2016-03-23 오후 4:22:01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도시 개발과 재생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알려진 변창흠 SH공사 사장은 대학 시절 경제학을 전공했다. 경제학도가 부동산 분야에 뛰어든 데에는 사연이 있다. 그 중심에는 변 사장의 인생을 바꾼 책인 헨리 조지가 지은 ‘진보와 빈곤’(사진)이 있다.

대학 시절 경제학을 공부하던 그는 한국 경제학계가 경제의 3요소인 노동과 자본, 토지 중 토지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런 고민을 함께 하던 선배가 권해준 책이 바로 진보와 빈곤이다.

이 책은 부의 불평등 문제를 토지사유제에서 찾았다.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는 노동자와 자본을 활용한 기업 활동을 통해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자본가와 달리 지주는 땅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익을 얻는 불평등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헨리 조지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지주가 얻는 불로소득에 많은 세금을 물리고, 이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땅값이 오르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인구는 늘어나고 사회가 발달하면서 땅에 대한 필요는 점점 늘어났지만 땅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변 사장은 이 책을 통해 경제학의 한 요소로 토지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대학원에서 부동산과 도시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박사과정에서는 행정학을 전공하며 경제학도에서 사회과학자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

이후에도 이런 생각은 꾸준히 그의 삶에 모토가 됐다.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대규모 개발보다는 재생을 통해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학문적 신념을 만들게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덕분에 그는 개발을 반대하고 부동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학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SH공사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각종 토론회에서 그는 개발론자들과 맞서는 논객으로 유명했다.

그는 “토지를 일반 자본처럼 시장에만 맡겨 놓으면 안된다”며 “특히 우리나라처럼 땅덩어리가 좁은 나라에서는 토지를 (투기 억제 등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양극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고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진다”고 지적했다.

SH공사 사장으로 취임해서도 마찬가지다. 실천하는 학자가 돼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답게 서울시의 주택·도시 개발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의 수장에 머물지 않고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주력하는 도시 재생과 주거 복지, 마을공동체 등의 사업도 그의 생각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는 “땅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역사와 문화,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땅을 경제적 가치로만 보고 다 파헤치고 개발해버리면 이런 가치가 다 사라지고 몇몇 토지주에게 부를 집중시키는 결과만 낳게 된다”며 “현재의 모습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소규모 개발이나 집수리 등을 통해 거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땅(공간)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도시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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