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나이키양말 수출하던 곳...이젠 지하공장 신세

전국 양말 40% 생산하는 도봉구, 생산 환경 열악
등록 업체 42개, 무등록 업체는 400여 개
불법체류자 고용단속 피하려 지하실 문 잠그고 운영
도봉구, 지식산업센터 설립으로 양말산업 부흥 노력
  • 등록 2015-03-02 오전 3:00:00

    수정 2015-03-02 오전 3:00:00

[이데일리 채상우 기자] 서울시 도봉구 신도봉 사거리부터 풍천슈퍼 사거리까지 1.5km 구간. 전깃줄이 얼기설기 뒤섞여 하늘을 가린 오래된 주택가 지하에는 곳곳마다 철문을 굳게 잠근 양말공장들이 밀집해 있다.

이들 대부분은 구청에 등록하지 않은 무등록 사업자들이다. 여러 곳을 두드려 봤지만, 불법 체류자를 고용한 업주들은 단속이 두려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반응이 없어 지쳐갈 때쯤 동남아시아계로 보이는 10대 소녀가 문을 열었다. 그는 당황한 듯 “사장님 없어요”만 연신 말했다. 다른 한국어는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를 따라 들어간 지하공장은 20여 평 규모로 숙식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일을 하는 공간이 파란색 천 하나로 분리돼 있었다.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에는 40대로 보이는 동남아시아계 여성 1명이 바닥에 앉아 뒤집어진 양말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그 옆에서 다른 여성 1명은 재봉틀 앞에 앉아 양말 앞부분을 재봉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한 무더기의 양말 더미가 쌓여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양말을 만드는 기계 3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천 한 장을 사이로 분리된 숙소는 시멘트 바닥 한 켠에 장판지를 깔고 이불을 펼쳐 놓은 것이 전부였다. 바닥에는 과자 봉지와 컵라면 용기가 굴러다녔다. 위생에는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지하에 위치한 양말공장이라 그런지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먼지와 섬유 분진이 많이 날려 목이 따가울 정도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마스크 하나 쓰고 있지 않았다.

도봉구에는 42개 양말 업체가 구청에 등록돼 있다. 하지만 이처럼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운영을 하는 양말업체는 등록된 업체의 10배인 400여 개에 달할 것으로 구청은 추산하고 있다. 무등록 업체들은 대부분 지하실에 위치해 있었으며, 임금을 줄이기 위해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들이 철문을 굳게 잠근 이유다.

김신택(53·사진) 중앙양말협회 총무는 도봉구에서 26년째 양말공장을 운영 중이다. 김 총무가 운영하는 공장에는 외국인 4명을 포함한 9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양말 만드는 기계는 총 25대가 돌아가고 있다. 외국인 모두 정식 등록된 근로자들이다. 김 총무는 도봉구 양말 업계가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 인력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봉구 양말 산업의 90%는 무등록 영세사업자들이다. 이들은 부가가치가 낮은 양말산업을 영위하기 위해 지하로 들어가고 불법 체류자를 고용해 임금을 낮추고 있다.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대부분 업체들이 자물쇠로 문을 잠그기 때문에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다”고 김 총무는 말했다.

김 총무는 5년 전만 해도 미국시장에 수요가 많아 영세사업자들도 먹고살 만큼 지역 양말산업이 번창했었다고 전했다. 김 총무는 “당시 월 매출의 40%인 1500만원 정도를 미국시장에 수출하는 것으로 벌어들였다. 나이키와 같은 유명 메이커도 우리의 고객사였다”고 말했다. 도봉구 양말산업이 급격히 어려워진 것은 중국, 베트남 등 신흥국으로 미국시장이 넘어가고 나서부터다. 그는 “이제는 미국 수출 규모는 전체 매출액의 5%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고객이 가격이 저렴한 중국과 베트남으로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도봉구청은 도봉구 양말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양말산업 클러스트’를 추진했다. 양말산업 클러스트는 아파트형 공장을 설립해 도봉구에 있는 양말업체를 한 곳으로 모아 집적효과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추진된 지원 사업이다. 하지만 양말산업 클러스트는 부족한 예산과 적합한 부지를 찾지 못한 탓에 실패로 돌아갔다. 양말산업 클러스트와 관련돼 책정된 도봉구의 예산은 연간 5000만원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서울시에서는 다른 자치구에 지원하는 봉제산업 예산도 줄이고 있는 추세라며, 양말산업 클러스트 예산 지원을 거부했다.

이달 들어 건축회사 한림건설에서 도봉구에 ‘지식산업센터’ 건립을 추진하면서, 양말산업 클러스터가 재조명되고 있다. 지식산업센터는 도봉역 인근에 위치한 과거 지엠대우자동차 부지에 들어설 예정이다. 규모는 대지면적 7986㎡에 지하 2층 지상 13층이다. 투자액은 1030억원이며, 평당 분양 예정 가겨은 690만원으로 다른 서울시내 지식산업센터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성수동 지식산업센터는 평당 970만원 이상이며, 서울디지털밸리 지식산업센터와 영등포 지식산업센터는 평강 약 700만원 이상의 분양가가 형성돼 있다.

도봉구는 지식산업센터에 양말 디자인센터, 수출 지원센터, 연구개발(R&D)센터 등 양말산업을 발전시킬 인프라를 구축해 도봉구 양말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개발하겠다는 의지다.이와 함께 구는 양말업계 종사자에게 중소기업육성지원기금 대출 금리를 현행 3%에서 2%로 인하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지식산업센터 설립과 금융지원으로 어려움에 처한 도봉구 양말산업이 살아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민영기(41) 미주섬유 사장은 “힘이 없는 양말업계가 하나로 모여 힘을 합칠 수 있는 기회”라며 “클러스터 디자인 비용이나, 수출 지원 등을 받으면 보다 수월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무는 “지식산업센터에 양말산업을 위한 시설이 들어선 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이를 발판으로 지정한 밀집형 양말공장지대가 설립돼 도봉구가 양말산업의 메카로 떠오를 수 있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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