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속의 '늪'에 빠진 韓·日

  • 등록 2013-10-30 오전 6:01:02

    수정 2013-10-30 오전 6:01:02

[이데일리 김태현 기자]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안 받았다.”

이른바 ‘부자증세’가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면서 상속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본에서도 1947~55년에 태어난 단카이(團塊·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상속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A씨는 얼마 전 부모로부터 일본 아이치(愛知)현 구로자사(黑笹) 지역내 임대 아파트 한 채를 상속받았다. 구로자사는 거주지로서도 평판이 좋고 근처에 대학도 있어 임대 수익에 대한 기대감이 큰 곳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이전과 달리 대학을 가려는 학생 수가 많이 줄어 주변 지역 임대 아파트 수요가 급감했다. 게다가 널뛰기하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팔아치우기도 쉽지 않았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인 셈이다.

정부의 상속세 제도 강화도 상속을 꺼리게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상속세를 현재 50%에서 55%로 인상하고, 기초공제 대상도 4800만엔(약 5억2218만원) 이하로 낮춰 과세 대상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은 상속 대란을 피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중소기업 상속세 완화를 검토 중이다. 중소기업 만큼은 가업승계 범위를 넓혀 경제활동을 활성화하겠다는 계산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후계자에 넘겨주는 비(非)상장 주식 중 평가 대상액을 전체 20%로 낮추고 그 외 80% 자산에 대해 상속세 및 증여세를 유예한다. 단 주식을 5년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는 조건이다.

한국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인구 및 소득 감소로 부동산 불패신화는 깨졌고 상속세율(50%)은 일본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게다가 1954~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어 ‘상속 대란’이 연출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일본과 다른 점은 중소기업 가업승계 제도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한국에서 가업을 이어받을 경우 기업 재산의 70%(최대 300억원)까지만 상속세 공제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상속세 부담으로 공중 분할되는 중소기업도 적지 않다.

일본이 지난 15여년 가까이 이어진 디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는 배경에는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있다. 이들이 일본 국내 고용과 소비를 이끌었다는 평가다.

한국은 소비 위축과 자산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업승계에 부담을 주는 세제를 뜯어 고쳐야 한국 전체 기업에서 9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 있다. 세금 부담 때문에 한국경제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는 중소기업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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