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화백은 사건 당시의 상황을 다룬 수기(원고지 40여매 분량)를 직접 써서 보관하고 있었다. 화백의 마지막 전시회가 열렸던 1998년, 아들 경원(45)씨가 아버지의 수필과 그림을 정리하다 이를 발견하고 워드로 정리해 보관하고 있었다. 이 문서가 이번에 공개된 것. 동승기는 경인일보가 ‘인천인물 100인’ 시리즈를 준비하며 우 화백의 유가족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밝혀지게 됐다.
우 화백이 직접 쓴 원고는 그 후 몇 번의 이사 끝에 사라져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고 유족인 딸 미령(48·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씨는 전했다. 미령씨는 이날 기자와 만나 “사건 당일, 아버지는 자식 4명을 불러 앉혀 놓고 당시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승객들도 타고 있었는데 먼저 총을 쐈던 진압군에 대해 굉장히 분노하셨다”며 “언젠간 밝혀야겠다고 생각해서 생전에 문서를 계속 갖고 계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작성 일자가 실미도 사건 직후인 71년 9월이라 적혀 있는 문서 서문에는 “이 글은 사건 당시 보도된 신문이나 국회의원 조사에서 송도교전 상황이 약간 차이가 나기에 적어두며, 발표해도 무방할 시기가 올 때까지 보류해 둘 것”이라고 씌어져 있다. 우 화백의 동승기는 영화 실미도를 통해 일반에 알려진 것과는 몇몇 대목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음은 주요 내용.
◆버스 탈취 과정
우 화백은 사건 당일 12시40분경 송도 유원지 정문 앞에서 인천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당시 버스 승객은 자신과 20대 남녀 한 쌍이 전부였다고 한다. 다음 정류장에서 면식이 있는 동서기 외 한 명과 고등학생 한 명, 두서너 명의 남자가 올라탔다.
버스가 수인선 송도역을 출발하자 그곳서 약 100미터 앞 옆길에 일단의 군인들이 길 양쪽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차가 그들이 있는 곳에 이르자 그들은 길을 일(一)자로 막고 대위 계급장을 단 장교가 장총을 들어 차를 세웠다.
20명 내외로 보이는 그들이 다 차에 오르자 장교는 여차장 옆에서 “다 탔나? 너희들은 오른쪽에 자리 잡고 일반 손님은 왼쪽으로 보내” 하고 명령조로 말하여 모두들 자리를 바꾸게 했고 곧이어 누군가가 “운전사, 빨리 몰지 않으면 죽인다” 하고 위협을 했다.
◆최초 사격자
최초 사격자는 영화에서처럼 실미도 부대원(설경구)이 아니라 진압군이었다고 한다. 동승기는 “부대원들이 탄 버스가 출발하는 순간 차창은 2㎝간격으로 구멍이 뚫리고 동시에 외부에서 연발의 총성이 들려왔다”고 기록했다. 그 순간, 자신이 타고 있던 버스에선 “엎드려!” “이 새끼들, 총질을 해?”라는 소리가 들리며 동시 교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최초 격전지
부대원들과 진압군간의 첫 총격전이 벌어진 곳도 영화처럼 바리케이드가 쳐진 평지가 아니라 아무런 저지선이 없는 내리막길이었다. 동승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이들이 차에 오를 땐 외부의 그 어느 곳에도 군인들이 있는 것을 못 보았는데…(중략). 버스 오른쪽은 차가 서 있는 도로변에서 완만한 경사의 밭과 야산이 수인선 철로까지 연장되고 철로를 넘어서서는 경사가 빠른 산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외부에서는 내려다보며 사격을 할 수 있고 표적이 움직이지 않는 버스와 차내에 있는 인원은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이 절대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
◆목적지
◆실미도 부대원들의 태도
영화에선 부대원들 모두가 비장한 결의를 보였던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인간적인 고뇌도 다소 드러났었다고 한다. 우 화백 앞에 있던 한 부대원은 풀죽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나도 집에는 부모가 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또 창 밖을 내다보던 군인 하나가 옷을 잘 차려입은 남녀를 보고 “야, 저 새끼 옷 잘 입고 간다. 쏠까?” 라고 하자 누군가가 “야, 민간인은 다치지 말아”라고 말했다는 구절도 나온다.
◆대원들이 밝힌 자신의 정체
영화 속에서 설경구는 승객에게 “주석궁을 폭파하고 김일성의 목을 따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말했다. 기록에는 한 대원이 “우리는 공비가 아니다. 우리는 김일성이를 적으로 싸우는 특수부대인데 4년 동안을 시골에서 죽을 고생만 했다. 그런데 나라가 우리를 배반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대원들은 승객들의 의심을 풀려는 의도인지 “여기저기서, 또 그 후에도 다른 병사들이 몇 번씩 이 말을 되풀이해서 말했다”고 동승기는 썼다.
인천=오윤희기자 oyounh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