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스산한 지하벙커 속…질투로 추락하는 인간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연극 '오셀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현대적 연출로 재구성
170분간 팽팽한 심리게임 펼쳐져
박호산·유태웅, 오셀로 역 2가지 색깔 해석
  • 등록 2023-05-22 오전 5:50:00

    수정 2023-05-22 오전 5:50: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이 지하벙커로 변신했다. 물이 흘러내린 자국으로 가득한 검은 벽이 토월극장의 깊은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무대 앞쪽에 고여 있는 물은 스산한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질투로 추락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 연극 ‘오셀로’가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다.kwh

연극 ‘오셀로’의 한 장면. (사진=예술의전당)
‘오셀로’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 무어인(이슬람계로서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사람) 장군 오셀로가 악인 이아고의 계략에 빠져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하다 끝내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등장인물들은 사랑과 질투, 오해로 엮여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도 인간의 본성과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고전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연출이 눈에 띈다. 배우들은 현대적인 의상을 입고 등장해 고전적인 어법에서 벗어나 대사를 주고받는다. 공연 시간은 쉬는 시간을 포함해 170분. 그러나 여러 인물 사이에서 펼쳐지는 팽팽한 심리 게임이 좀처럼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한다.

극단 풍경의 대표로 실험적이고 세련된 연출로 잘 알려진 연출가 박정희가 이번 무대를 이끈다. 박 연출은 최근 열린 언론 시연회에서 “‘오셀로’를 ‘이아고의 연극’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며 “(이방인으로서) 오셀로가 가진 이질적인 모습, 그가 가진 사랑과 관점의 변화 등을 통해 동시대인이 잊고 있는 근원적인 감정의 힘을 환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무대를 지하벙커로 표현한 것은 등장인물들의 불안을 반영한 것이다. 박 연출은 “‘오셀로’의 인물들은 불안에 잠재돼 있고, 그 속에서 사랑을 꽃피운다”며 “가장 불안하면서도 안전한 장소로 지하벙커를 무대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연극 ‘오셀로’의 한 장면. (사진=예술의전당)
주인공 오셀로 역은 드라마를 통해 친숙한 배우 박호산, 유태웅이 더블 캐스팅됐다. 동갑내기이자 대학 동기로 절친한 두 배우가 각자 다른 색깔로 보여주는 오셀로가 이번 공연의 관람 포인트다. 박호산이 조금 더 현대적인 모습으로 오셀로를 연기한다면, 유태웅은 보다 고전에 가까운 연기 톤으로 오셀로를 표현한다.

박호산은 “대본을 읽을 때 오셀로가 바보 같았는데, 그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힘은 열등감이 아닌 사랑이어야 했다”며 “(데스데모나를 향한)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질투도 생겨나고, 그래서 큰 실수를 하는 인물이다”라고 설명했다. 유태웅은 “연습하며 제일 답답했던 게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게 진실을 물어보지 않고 혼자 끙끙 앓는 것이었다”라며 “오셀로가 가진 고독과 외로움이 혼합된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박 연출의 말대로 기존 작품에 비해 오셀로를 더욱 부각시켰다. 그럼에도 관객 입장에선 악역 이아고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능글맞은 건달처럼 인물들의 심리를 갖고 노는 이아고는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행동하는 현대인처럼 보인다. 연극 공동창작 집단 ‘양손프로젝트’ 멤버인 배우 손상규가 이아고 역을 맡았다. 손상규는 “‘오셀로’는 가장 고귀한 인간(오셀로)이 가장 평범하고 저열한 인간(인간)을 통해 추락당하는 이야기”라며 “이아고는 특별한 서사 없이 이 극을 작동시키는 인물이라 생각하며 작품에 접근했다”고 말했다.

고전다운 고전을 예상했다면 기대와는 다른 작품이다. 반면 고전의 재해석에 초점을 맞춘다면 흥미롭게 볼 수 있다. 드라마 ‘나쁜형사’ ‘D.P.’ 등에 출연한 배우 이설이 데스데모나 역으로 연극 무대에 데뷔한다. 소리꾼 이자람이 이아고의 부인 에밀리아 역으로 열연한다. 여신동 무대감독, 장영규·김선 음악감독 등이 창작진으로 참여했다.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선보이는 ‘토월정통연극’ 시리즈 작품이다. 공연은 오는 6월 4일까지.

연극 ‘오셀로’의 한 장면. (사진=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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