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일 서울 금천구에 있는 30인 미만 제조업 사업장을 방문했을 때 근로자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바쁠 때 더 일하고, 더 일한 시간을 저축했다가 원할 때 휴가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다.
“바쁠 때 더 일하고, 원할 때 더 쉰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주52시간제 유연화의 목표다. 고용노동부는 ‘주 최대 69시간제’로 불리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 확대 등 주52시간제 유연화를 추진하면서 ‘바쁠 때 더 일 한다’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원할 때 더 쉰다’를 실현에 대해선 의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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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가 지난해 말 발간한 ‘2021년 일가족 양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의 연차유급휴가 소진율은 평균 58.7%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75.3%였던 2019년에 비해 17%가량 줄어든 수치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는 국가승인통계로서 지난해 8월 22일부터 11월 9일까지 실시됐고, 전국의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중 5070개의 표본사업체의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다.
연차유급휴가(연차)는 1년 동안 일한 대가로 주어지는 근로기준법상 유급휴가를 뜻한다. 1년 미만 근로자는 1개월 개근 시마다 1일씩 최대 11일, 1년간 80% 이상 출근 시에는 15일을 받을 수 있다. 최대 25일까지 지급된다.
연차를 다 쓰지 못한 이유는 ‘업무량 과다 또는 대체인력 부족’이 39.9%로 가장 많았다. ‘미활용 연차휴가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23.2%, ‘연차 부여 일수가 많아서(근로자가 쓰지 않아서)’ 20.5%, ‘상급자 및 동료의 눈치’ 15.2%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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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연차를 다 쓰지 않은 대기업 근로자 3명 중 1명은 연차를 쓸 수 있음에도 돈을 더 받기 위해 연차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5~9인 사업체는 금전 보상 때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20.6%에 불과하다.
근로자들이 개인 형편에 따라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편인지 4점 척도로 조사한 결과, 평균 점수는 2.8점으로 2019년(3.0점)과 2020년(2.9점)에 이어 하락 추세다. ‘매우 그렇다’와 ‘그런 편이다’를 합한 긍정 응답은 63.1%로 전년도(69.8%)보다 감소했다.
규모별로 5~9인은 평균 2.6점인 데 비해 300인 이상은 3.2점이었고, ‘매우 그렇다’의 비율도 23.2%와 37.3%로 차이가 컸다. 여전히 규모가 작은 사업체에서는 근로자들이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뜻이다.
OECD 최고 수준 과로 국가…원할 때 휴가갈 권리 보장될까
주52시간제는 기본 근로시간 40시간에 최대 연장근로시간이 1주일 기준 12시간까지 허용되는 방식인데, 정부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주’에서 ‘월, 분기, 반기, 연’으로 다양화할 방침이다. 이 경우 산술적으로 주당 69시간까지 일하는 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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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조차 자신이 원할 때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근로시간저축계좌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정부는 휴가 활성화 제도로 휴가 사용 만료 전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연차 사용을 안내하는 ‘연차휴가·사용 촉진제도’와 근로자가 20만원을 내면 정부와 사용자가 각각 10만원씩 보태 여행상품 포인트를 쌓아주는 ‘근로자 휴가지원 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들도 모두 근로자가 근로시간 및 휴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만들어진 제도로, 업무량이 많아 주어진 휴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선 효과를 내기 어려워 연차 소진율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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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유럽은 총 근로시간 자체가 적은데다, 근로자들도 연장근로까지 하면서 일을 하는 문화도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사용자의 필요가 반영된 제도 개편으로 근로시간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법정근로시간을 줄일 수 없다면, 적어도 유급 연차휴가 일수를 늘리는 등 실효성있고 구체적인 휴가 활성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