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자유를 향한 가장 치열한 몸짓 [문화대상 이 작품]

심사위원 리뷰
뮤지컬 '마타하리'의 화려한 귀환
5년만에 돌아온 세 번째 프로덕션
전설의 무희 아닌 여인의 삶에 초점
내면 속 자아 등장시켜 개연성 더해
  • 등록 2022-06-09 오전 5:30:00

    수정 2022-06-09 오전 9:43:41

[지혜원 경희대 교수 겸 공연칼럼니스트] 전쟁의 참혹함을 관통하는 파리의 낭만만큼이나 마타하리의 인생은 아이러니 투성이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유럽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유명세를 손에 쥐고도, 그녀의 영혼은 가면 뒤에 갇혀 있다. 전 세계 남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면서도 ‘예전의 그 소녀’를 그리워하는 순수한 여인. 관객과 기자의 눈을 의식하며 무대 위에서 사느라 잊었던 진짜 자신을 용감하게 되찾아 화려하게 떠나간 태양처럼 뜨거운 인생. 2016년 초연 당시 평단과 관객의 호평 속에 ‘한국뮤지컬어워즈’와 ‘예그린뮤지컬어워드’ 등에서 수상했던 ‘마타하리’가 5년 만에 세 번째 프로덕션으로 돌아왔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이중 스파이 혐의를 받고 체포돼 총살 당한 마타하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이 작품은 일본에 라이선스가 수출되며 글로벌 뮤지컬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초연과 재연을 거치며 서사와 캐릭터에 변화를 줬던 ‘마타하리’는 이번 프로덕션에서 전설의 무희 마타하리가 아닌 평범한 행운이 허락되지 않았던 마가레타 거트루이다 젤러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뮤지컬 ‘마타하리’ 공연 한 장면(사진=EMK뮤지컬컴퍼니).
이를 위해 ‘불편한 이야기’라는 곡을 통해 펼쳐지는 마가레타의 전사와 그녀의 내면 속 자아로 표현되는 가상의 존재가 새롭게 등장한다. 안나, 아르망과의 관계에서도 자연스러운 감정선이 촘촘하게 쌓이며 개연성을 더했다. 절망의 끝에서 안나를 만나 마가레타에서 마타하리로 다시 태어난 그녀는 아르망을 통해 비로소 혼란을 벗어나 담담하게 마지막 자유를 맞는다. 극 중 자신의 이중성을 힘겹게 고백하는 마타하리를 향해 “이름을 바꾼거네”라고 가볍게 말하며 어른스럽게 그녀를 이해하는 아르망의 대사가 인상적인 이유는 세상이 원하는 모습을 연기하며 얻은 허상의 명예가 아닌, 진짜 자신의 모습을 알아봐주는 한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공감하기 때문이다.

초연 당시 무대예술상을 휩쓸었던 ‘마타하리’의 무대는 전쟁의 잔혹함과 화려한 도시의 대비를 효과적으로 재현한다. 특히 춤과 의상의 변화와 함께 점점 마타하리로 완성돼 가는 장면에서 전시 상황을 보이스로 교차하거나 전쟁이 빼앗아 간 평범한 일상을 반복되는 무대전환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극의 서사를 이끄는 유기적 장치로 기능한다. 마가레타의 자아가 추가된 만큼 초·재연에 비해 한층 미학적이고 상징적인 연출이 가미된 점도 눈길을 끈다. 다만 이전 버전에 수정된 서사와 캐릭터가 더해지면서 다소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설정과 장면이 오히려 극의 용량을 초과하는 점은 아쉽다. 예를 들어 펭르베 장관이 1인 2역으로 연기하는 사회자 역할은 기능이 모호하고, 한층 진지해진 서사 중간에 등장하는 쇼뮤지컬 요소는 결이 튄다. 본 서사와의 연계 없는 액자구성도 쉽게 와닿지 않는다. 또한 마가레타와 마타하리 캐릭터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불편한 이야기’와 ‘내 맘을 조심해’ 넘버에서 정보의 양을 줄이고 좀 더 간결하게 연출됐다면 좋았을 듯하다.

초연과 재연에 이어 마타하리를 연기하는 옥주현이 아픔을 딛고 일어선 강인하고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뮤지컬에 첫 도전한 솔라는 화려한 모습 속에 감춰진 순수함을 연기하며 성공적으로 무대에 안착했다. 마타하리의 평범한 행복을 되찾는 열쇠, 아르망 역에는 윤소호, 이홍기, 김성식, 이창섭이 두 명의 마타하리와 합을 맞춰 각기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시대의 비극이 응집된 라두 역은 최민철과 김바울이, 마타하리의 옆을 든든히 지키는 안나 역은 최나래와 한지연이 연기해 극의 탄탄함을 더한다.

다시 돌아온 뮤지컬 ‘마타하리’는 화려한 무희의 모습 뒤에 자신을 숨겨 치열하게 살아 남은 한 여인의 삶, 그녀가 꿈꾸었던 가장 평범한 자유와 행복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8월 15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한다.

뮤지컬 ‘마타하리’ 공연 한 장면(사진=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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