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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동의 장소가 된 승지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곳은 삼성의 영빈관으로 불리며 대지 991㎡, 연면적 330㎡로 본관과 부속건물로 이뤄져 있습니다. 삼성의 핵심 의사결정과 주요 경영 판단이 이뤄지는 곳으로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이 살던 집이었지만, 1987년 그가 별세한 이후 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주요 기업 총수들이 여기 모인 것은 지난 2010년 7월 15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단 만찬 이후 약 9년 만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2014년 병석에 누운 이후 한동안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이 곳이 빈 살만 왕세자 방문을 계기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 경제사의 굵직한 만남과 결정들이 승지원에서 이뤄졌습니다.
1990년대 초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됐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 관련, 1994년 2월 22일 전경련 회장단이 만남을 가진 곳도 승지원이었습니다. 당시 최종현 선경그룹(현 SK그룹) 회장과 이건희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 전경련 회장단 12명이 승지원에 모여, 사업 지배주주 문제 등을 논의하고 합의안을 도출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삼성과 주요 사업 파트너였던 해외기업인들도 여러 차례 승지원을 찾았습니다.
경제 분야나 기업인 외에도 종교계 인사와 정치인 등도 승지원으로 초대됐습니다.
IMF외환위기 직후에 이건희 회장은 고 김수환 추기경과 승지원에서 만찬을 갖고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당시 김 추기경은 대량 실업과 이로 인한 사회 불안에 대한 우려를 전하고 대기업과 근로자가 공생하는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이 회장에게 당부했습니다. 이 회장도 이에 공감을 표시하고 “경제 회생을 위해 적극적은 노력과 고용창출에 기여하는 기업 본연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답했습니다.
2002년에는 당시 중국을 이끌던 장쩌민(江澤民)주석의 장남인 장멘헝(江綿恒) 중국과학원 부원장이 이 회장과 승지원에서 만나 반도체와 IT분야 협력을 요청했다. 2008년 삼성 특검 때는 승지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승지원(承志園)은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는 이병철 선대회장의 뜻을 잊지 않고 계승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번에 5대 그룹 회장과 빈 살만 왕세자 등을 승지원으로 초대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