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억 규제의 역설]양극화 부른 규제…현금부자만 웃었다

분양가 9억 넘는 아파트 수두룩
대출규제에 현금 없으면 그림의 떡
자금 동원력 풍부하면 규제가 기회
신규아파트·급매물 사 차익 노려
  • 등록 2019-03-12 오전 4:29:00

    수정 2019-03-12 오전 4:29:00

서울의 한 시중은행 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지난달 아파트 청약시장에선 서울 광진구 화양동 ‘e편한세상광진그랜드파크’ 예비당첨자 명단이 화제가 됐다. 분양가가 최저 9억6000만원부터 시작해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한데도 1980~1990년대생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청약아파트는 총 분양가 9억원이 넘으면 중도금 대출이 안되는데도 20·30대가 대거 몰린 것이다.

정부가 9억 이상 주택에 대한 대출 문턱을 대폭 높이면서 오히려 현금 부자에게 투자 기회가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들어 서울 부동산시장이 꽁꽁 얼며 1·2월 아파트 매매거래가 2012년 ‘빙하기’ 수준으로 돌아갔지만 ‘현금 부자’는 급매물을 사들이며 차익 낼 기회를 얻었다.

청약시장만이 아니다. 재고주택시장에서도 정부가 규제지역에선 공시가 9억원을 넘으면 구입시 실거주 목적을 제외하고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했지만 이를 비웃듯 고가주택 신고가 기록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 강북권 ‘대장주’로 꼽히는 종로구 홍파동 ‘경희궁자이’ 전용 116㎡는 지난달 21억원에 실거래되며 종로권 일대 최고가 아파트로 올라섰다. 강남구 삼성동 ‘브라운스톤레전드’(전용 219㎡·29억9000만원), 서초구 서초동 ‘신동아1차’(전용 86.61㎡·15억8000만원) 등 강남권에서도 신고가가 속출하고 있다.

부모의 현금 동원력을 등에 업은 20대들의 부동산시장 등판도 눈길을 끈다. 한국감정원과 국토교통부가 첫 공개한 서울지역 아파트 매입거래 연령대별 결과를 보면 20대 이하가 3.7%를 차지했다. 주택 증여도 지난해 사상 최고치를 다시 쓴 데 이어 올해 1월에도 지난 한 해 월 평균치 9300건을 훌쩍 넘으며 1만건에 육박한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중개업소에 부모와 함께 방문한 20대는 귀빈 대접을 받고, 30·40대는 찬밥 신세라는 말까지 나온다”며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 재력을 등에 업은 20대들이 ‘큰 손’으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유동성 자금이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금융상품에 몰리는 등 여전히 시중에 여유자금이 풍부하다”며 “그러다보니 정부 규제에도 주택매물을 내놓기보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보유하거나 현금을 동원해 주택을 사들이는 여유층이 많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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