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부 디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토스카 후속으로 국내에 출시됐던 8세대 말리부에 디젤모델을 선보였다. 캡티바에 쓰이던 독일 오펠의 2.0L 디젤엔진을 얹어 2014년 출시했다. 당시 출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2.0L 가솔린 엔진 모델에 비해 상대적으로 넉넉한 힘과 탁월한 연비를 바탕으로 소소한 인기를 끌었다.
이번 더 뉴 말리부의 디젤엔진은 가솔린과 마찬가지로 다운사이징을 거쳤다. 1.6L 디젤이다. 1.6L는 현재까지도 소형차 급에나 쓰이는 배기량이지만 파워트레인과 경량화 기술의 발달로 중형 이상 차급에서 장착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엔진 크기가 작아 엔진룸 설계에 유리할 뿐 아니라 공차중량도 줄어 연비도 좋아진다. 갈수록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대응하기도 수월하다.
시승차의 색상은 '카푸치노 브라운'으로 이름처럼 따뜻하고 부드럽다. 더 뉴 말리부의 하이테크한 디자인과도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디젤모델 외관은 1.35L E-터보 가솔린 모델과 차별점을 찾기 힘들다. 후면에 붙은 ‘TD(터보디젤)’뱃지 만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전면부는 새로운 듀얼 포트 그릴을 적용해 라디에이터 그릴의 면적을 키웠다. 헤드램프와도 연결했다. LED를 적용한 헤드램프는 더욱 젊어져 ‘요즘차’답게 느껴진다.
어색한 모양새였던 ‘ㄱ’자형 주간주행등은 범퍼 하단으로 밀려난 방향지시등과 함께 디자인을 날카롭게 다듬었다. 전면부 분위기를 바꾸는데 일조한다. 주눅들어 보이는 인상 덕에 ‘메기부’라는 별명을 얻었던 전작에 비해 훨씬 여유가 넘쳐 보인다.
후면부는 리어램프 디자인의 변화가 눈길을 끈다. 눕힌 ‘Y’자 형태의 제동등을 주축으로 내부그래픽을 손봤다. 하지만 깔끔했던 전작 LED리어램프에 비해 되려 조잡해 보인다. 제한된 상황 속에서 디자인 변화를 이끌어내야만 했던 디자이너의 부담감이 느껴진다. 범퍼 밑으로 휑하니 드러나는 리어 서스펜션은 이번에도 그대로다. 말리부를 뒤에서 따라갈 때 유난히 돋보이는 바로 그 부분이다. 기능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을 들었지만 눈으로 보기에는 아쉽게 느껴진다.
실내의 변화는 기능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전작에서 불편함으로 지적됐던 요소를 개선해 사용자 편의성을 높인 것이 핵심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새로워진 계기판이다. 좌우에 타코미터와 수온계, 연료계가 배치됐고 중앙에 8인치 디스플레이 계기판이 자리잡았다. 3개의 링으로 구성된 형태가 마치 캐딜락의 디지털 계기판을 연상케 한다. 시인성이 뛰어나고 움직임도 부드럽다. 정보를 간소화해 장거리 주행 시 눈의 피로도를 낮춘 ‘투어링’ 테마를 마련한 점도 좋다. 평균연비, 차선이탈경고 등 차량 정보를 안내하는 그래픽이 엉망인 점은 역시 쉐보레 다운 부분이다.
센터페시아 하단에 마련된 멀티미디어 슬롯에 조명을 추가해 야간에도 USB와 AUX 슬롯을 찾기 쉽게 만든 점도 개선된 부분이다.
기어레버 뒤에 마련된 무선충전장치는 수직으로 꽂아넣는 형태다. 차량이 크게 흔들려도 충전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은 좋지만, 위치가 좋지 않다. 핸드폰을 넣고 꺼낼 때 불편함이 있고 무엇보다 투입구 크기가 작아 큰 스마트폰을 넣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얇은 케이스를 씌운 기자의 갤럭시S9+가 힘을 주어야 겨우 들어간다.
다만 시트 열선이 쿠션(방석) 부분에만 들어오는 것은 아쉬운 부분. 전작에서도 지적을 많이 받았는데도 그대로인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누가 쉐보레 차 아니랄까봐 짤막한 센터 암레스트도 그대로다. 이 정도면 아이덴티티라고 봐도 될 정도다.
전장이 길어 동급 가장 넓은 트렁크 용량을 확보했다. 뒷좌석을 6:4로 접어 적재공간을 더 늘릴 수 있다는 점도 매력 포인트다.
더 뉴 말리부 디젤에는 1.35L의 VT40 CVT(무단변속기)가 아닌, 2.0터보 모델과 동일한 ‘GEN Ⅲ’ 6단 자동변속기가 매칭됐다. 보령 공장에서 생산되는 이 변속기는 한 때 굼뜬 반응속도와 강한 변속충격으로 국내소비자들에게 안 좋은 인식을 심어줬다. 하지만 현 3세대에 이르면서 그 간 제기된 문제점을 모두 개선했고 1.6L 디젤과의 궁합도 이질감이 없다.
기존 올 뉴 말리부가 그랬든 이 차 역시도 패밀리카답게 편안하고 안락한 주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19인치에 달하는 거대한 휠이 노면의 충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부드러운 서스펜션과 시트가 이를 상쇄해 안락한 승차감을 제공한다.
차간거리 조절이 가능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더 뉴 말리부로 오면서 차로 유지 보조 기능을 추가했다. 스티어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완만한 코너 정도는 무난하게 통과했다. 다만 차선이 또렷하지 않은 곳에서는 종종 차선을 핑퐁처럼 넘나든다. 동일한 구간에서 볼보나 현대차의 차로 유지 기능에 비해 약간은 미흡한 모습을 보여줬다.
주행연비는 디젤의 경제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틀간 동부간선도로를 경유한 출퇴근과 중부고속도로를 포함 400km 가량을 주행한 평균 연비는 15.1km/L다. 복합 연비인 14.5km/L를 소폭 상회한다. 대부분이 고속주행이었으나 19인치 휠이 장착됐고 연비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주행했음을 감안하면 나름 만족스러운 수치다.
더 뉴 말리부 1.6 디젤의 시작 가격은 LT 모델 2936만원으로 동일한 옵션의 1.35L E-터보 모델 가격에 비해 370만원이나 비싸다. 차량 자체의 경쟁력은 충분하지만 디젤의 연비 하나 만으로 판단하기에는 가격차가 너무 벌어진다.
또한 SUV와 마찬가지로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환경규제와 미세먼지 이슈로 디젤 유종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한 것도 악재다. 강세였던 유럽산 디젤 세단도 폭스바겐 디젤게이트에 연이어 발생한 BMW 화재 사건으로 판매량이 큰 폭으로 줄었다. 이런 분위기를 국산 디젤 세단이 피해가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 뉴 말리부 디젤이 과연 시장에서 어떤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한 줄 평
장점: 경쾌한 주행감각과 넉넉한 공간, 소형차 수준의 저렴한 유지비
단점: 구매를 망설이게 되는 애매하게 높은 가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