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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국내 ‘리딩뱅크’인 KB국민은행이 19년만에 총파업에 돌입한 것은 은행 산업을 둘러싼 급격한 환경변화 과정에서 불거진 파열음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을 역행한다는 점에서 국민은행 노조를 지켜보는 여론은 싸늘한 편이다.
은행산업의 변화‥벼랑 끝에 선 노사관계
KB국민은행 노사 협상이 결국 총파업이란 파행으로 치달은 것은 은행 산업구조 변화와 직결돼 있다. 국내 은행산업은 오랜 기간 진입 장벽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이자장사에 의존한 천수답 경영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연공서열식 연봉 구조와 고임금 체계가 고착화했다.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를 포함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이런 구도에 변화가 시작됐다. 핀테크(금융+기술)나 인터넷은행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데다, 은행 간 실적 경쟁도 한층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도 경쟁과 혁신을 유도하는 분위기로 급격히 이동하자 은행 입장에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비용은 낮추고 효율성을 높이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국내 은행들도 이런 변화에 맞춰 디지털 금융 비중을 확대하고 연공서열 대신 성과주의를 적용해 수익성 개선 작업에 박차를 가해왔다.
특히 국민은행은 이런 변화의 선두에 섰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취임한 이래 느슨한 조직문화와 고임금 구조를 고치려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지속했다. 당장 성과도 나타났다. 만년 2위이던 국민은행은 신한은행을 제치고 국내 리딩뱅크 자리를 꿰찬 게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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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서는 노조가 이날 총파업에 돌입한 것도 윤종규식 구조 개혁을 막기 위한 실력행사 성격이 가미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실제 협상 과정에서 회사 측이 노조의 요구를 대폭 수용해 시간외수당을 포함해 성과급을 기본급의 300%까지 지급하기로 했으나, 임금피크제나 페이밴드(연봉상한선)을 두고 기존입장을 굽히지 않은 채 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국민은행 노조는 금융권의 대표적인 강성노조로, 전국금융산업노조(금융노조) 가운데서도 최대 조직”이라면서 “금융산업 구조변화 속에서 현재 노동조건을 지키려 제 일선에 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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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성과급 비판받는 이유 성찰해봐야”
국민은행 노조의 총파업을 보는 여론의 시선은 싸늘한 편이다. 상대적으로 고액연봉(평균 9100만원)을 받으면서도 300%가 넘는 성과급 지급을 파업 명분으로 삼았다는 점이 크다. 노조 측에서는 높은 수익을 낸 만큼 노조원에게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논리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수익은 정부 정책과 금융환경에 의존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삼성전자 직원들이 성과급을 받는다면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지만, 은행원이 성과급을 받으면 왜 비판이 커지는 지 은행원 스스로 생각해봐야 할 부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페이밴드를 철회하고 임금피크제 도입시기를 더 늦춰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은행권을 둘러싼 환경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봐서다.
국민은행은 호봉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페이밴드는 연차가 쌓여도 승진하지 못하면 임금인상을 제한하는 제도로 2004년 이후 입사자만 적용된다. 정년이 보장된 상황에서 열심히 일해 승진하지 않아도 고액연봉을 받는 부작용을 막으려는 취지다. 회사는 이 제도를 확대하자는 입장이나 노조 측은 ‘저연차’ 직원의 차별이라며 없애자는 주장이다.
국민은행의 임금피크제는 다른 은행과 견줘 기형적인 구조다.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도 직급별로 다른데 이러다 보니 임금피크제에 먼저 진입한 부장급보다 팀원이 연봉을 더 받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은행 측은 이런 부작용을 막으려 이번에 임금피크제 진입시기를 1년 연장하면서 사측은 직급별 진입 시기를 통일하자고 요구했으나 노조 측은 팀원의 경우 6개월 연장에 그친다며 반발 중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세계 금융권이 고정비용을 줄이고 데이터나 AI 기반 디지털금융으로 넘어가는 추세”라며 “파업은 무리한 기득권 지키기”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