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은 올해 4세 경영체제의 막을 올리며 주요 그룹사 가운데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선친인 고(故) 구본무 회장이 지난 5월 타개한 직후 그룹 총수에 오르며 상무에서 곧바로 회장으로 승진했다.
구 회장은 LG의 혁신을 위해 부회장단의 절반을 전보 또는 교체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그는 연말 임원 인사에서 신규 임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상무 134명을 발탁해 미래 성장 이끌어갈 인재 풀을 확대했다. 또 로봇과 인공지능(AI) 등 미래 사업에 대한 투자 의지를 강조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 9월 승진한 이후 그룹 의사결정권을 ‘정의선 체제’로 구축하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정 수석부회장은 △FCEV(수소전기차) 2030 비전 발표 △부회장·사장단 쇄신 인사 단행 △부품 협력사 1조6700억원 지원 결정 △해외 법인장 회의 주재 등 그룹의 굵직한 일을 순차적으로 처리했다.
그는 특히 실적악화에 빠진 현대차그룹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내년을 ‘V자 회복’의 원년으로 삼고, 미국·중국 등 핵심시장을 중심으로 판매와 수익성을 확대해 나가자”고 주문하며 고삐를 죄었다.
미래 책임질 CEO 선임 활발
주요 그룹의 연말 인사에서는 전문경영인들의 교체도 본격화됐다.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승진하거나 영입되면서 각 기업들의 미래를 책임지게 됐다.
LG그룹에선 권영수 부회장이 하현회 부회장과 자리를 맞바꾸며 지주회사인 ㈜LG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다. 명실상부한 그룹 2인자로 부상한 것이다. 그는 LG디스플레이를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 회사로 성장시켰고, TV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 육성을 본격화한 인물이다. LG화학은 지난 11월 신임 대표이사 부회장에 글로벌 혁신기업인 3M 출신의 신학철 수석 부회장을 선임했다. 1947년 LG화학 창사 이래 첫 외부 수혈 CEO다.
SK그룹은 연말 인사에서 SK하이닉스 사업총괄 이석희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CEO)로 선임했다. SK하이닉스를 ‘첨단 기술 중심의 회사’로 변모시켜 최근의 반도체 고점 논란, 신규 경쟁자 진입, 글로벌 무역전쟁 등 산적한 과제를 타개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롯데그룹에선 김교현 롯데케미칼 대표가 그룹 화학사업을 총괄하는 BU(사업부문)장에 올랐고, 이영호 롯데푸드 대표는 식품 계열사를 총괄하는 식품BU장을 맡게 됐다. 신동빈 회장이 강조해온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글로벌 사업을 강하게 추진하고 혁신을 이끌 인재들을 중용했다는 평가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올해 세 분기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가는 등의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이번 재선임으로 대우조선 사장만 총 네 번 맡게 됐다.
일선에서 물러난 CEO들
새로운 인물이 경영 전면에 나선 만큼 일선에서 물러난 경영자들도 다수 생겨났다. 현대차그룹에선 양웅철 부회장과 권문식 부회장이 연말 인사에서 고문에 위촉됐다. 이채욱 CJ그룹 부회장은 건강 상의 이유로 지난 3월 경영 일선에서 퇴진했다.
일부 그룹 오너들은 비리와 갑질 등으로 퇴장하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임대주택을 고가로 분양 전환해 폭리를 취하고 수천억원대 경영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갑질 논란과 횡령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정우현 미스터피자 창업주는 MP그룹 경영권을 포기했다. 여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된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은 미국에서 장기 체류 중이다.
올 연말 재계를 가장 떠들썩하게 만든 주인공은 코오롱그룹의 수장 이웅열 회장이었다. 23년간 그룹을 이끌어온 이 회장은 오는 2019년 1월1일자로 그룹 회장직을 비롯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겠다며 직접 용퇴 의사를 밝혔다.
전문경영인 중에선 서울대 화학공학과 70학번 동기로 국내 화학업계 1위 자리를 놓고 경쟁을 펼쳐온 ‘영원한 맞수’ 롯데그룹 화학BU장인 허수영 부회장과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동시에 물러나 화제를 모았다.
이밖에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직격탄을 맞은 두산중공업의 김명우 대표이사 사장이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최악의 수주난을 겪었던 2016년말부터 현대중공업을 이끌어온 강환구 사장은 연말 인사를 통해 자문역으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