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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사무소에서 일하는 정세인씨(가명·37)는 남편이 육아휴직한 지 몇일 만에 ‘이제 좀 편해지겠구나’ 했던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육아휴직을 했을 때 남편처럼 회사일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물건너간 지 오래다. 정씨의 남편은 육아휴직을 ‘휴식과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으로 생각했다. 휴직 직후에 대학원에 등록해 학업에 열중했다. 심지어 다른 대학원생들과 술을 마시고 새벽에 귀가한 날엔 차라리 회사를 다닐 때가 나았다는 생각에 한숨이 났다.
육아휴직을 하고도 육아는 외면하는 ‘양심불량’ 아빠들이 급증하고 있다. 육아휴직 기간 중 해외여행·대학원 진학 등 육아와 무관한 일을 하다 적발돼 육아휴직 급여 부정수급으로 적발된 건수가 3년새 4배 이상 늘었다. 육아휴직을 휴식이나 이직 준비 또는 자기계발 기회로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고 아빠들이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도록 견인하는 제도와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6일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남성이 육아휴직을 내고 육아와 무관한 일을 하다 적발된 건수는 2014년 12건에서 2017년 55건으로 3년새 4.6배 늘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들어서도 6월말 현재 20건을 적발했다. 이들이 부정수급한 육아휴직급여는 2014년 1622만원에서 지난해 1억5000만원으로 3년새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들어서도 6228만원을 환수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육아휴직 부정수급은 주변의 신고가 아니면 적발이 쉽지 않다. 특히 민간기업은 신고 없이는 적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숨겨진 부정수급 규모에는 월등히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공무원 A씨는 아이를 아내에게 맡기고 로스쿨에 입학해 변호사 시험까지 합격했다가 적발됐다. B씨는 육아휴직 중에 아이만 친척이 있는 미국에 보내놓고 약 7개월을 혼자 지내다가 적발돼 그동안 받은 육아휴직급여를 환수당했다. 통계청 공무원이었던 C씨는 아이와 아내를 한국에 두고 혼자 10개월가량 해외에 체류했다가 적발됐다.
권오진 아빠놀이학교장은 “아빠들 중 육아휴직을 하고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며 “전문서적을 보면서 준비하거나 지역의 ‘맘카페’ 같은 곳에 가입해 아이 친구를 찾아보는 등 적극적인 육아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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