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칼럼] 퇴임 대통령의 예우

  • 등록 2013-02-22 오전 7:00:00

    수정 2013-02-22 오전 7:00:00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전부터 퇴임을 의식한 드문 대통령이었다. 그는 대선 당선 직후인 2007년 12월 28일 청와대를 방문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확실히 세우겠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부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이 대통령이 먼저 꺼낸 말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후 봉하마을로 갖고 내려간 청와대 문서관리 시스템인 ‘e-지원’이 문제가 되자 2008년 6월 이 대통령에게 선처를 부탁할 겸 전화를 걸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또다시 ‘전직 대통령을 잘 모시는 문화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발간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이 대통령이 퇴임후 대통령의 예우 운운한 것은 우리나라 대통령의 불행한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일 것이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4.19 혁명으로 물러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술자리에서 부하가 쏜 총탄에 숨졌다.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각각 그 다음 정권에서 ‘내란음모죄’ 와 비리 사건 등으로 감옥에 갔다.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은 친인척 및 측근 비리로 국민의 비판을 받았다. 이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예우를 잘 해주겠다고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벼랑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제 이 대통령은 며칠 후면 퇴임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퇴임연설을 통해 “퇴임 후 꽃피는 계절이 오면 4대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우리 강산을 한번 둘러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5년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는 모두 역사에 맡기고자 한다”고 했다.

오래 평가를 기다릴 것도 없다. 이 대통령은 스스로 ‘경제대통령’을 표방했지만 5년이 지난 현재 국민들은 섭섭하게도 이 대통령의 큰 경제치적을 별로 기억하지 못한다. 2008년 국제 금융위기 극복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98년 외환위기 돌파만큼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이 대통령 임기말에 성장률은 0%대로 곤두박질쳤다. 그렇다고 국내외 변수가 작용한 경기침체를 전적으로 이 대통령의 잘못으로 몰아세우기는 어렵다.

그저 경제를 대통령 한 사람이 살릴 것으로 믿고 행동한 국민과 대통령의 착각이 문제다. 이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자주 외국 출장을 나가 굵직한 수주를 했다고 자랑했으나 과연 대통령이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다.

이 대통령의 형과 측근 비리는 잘못이다. 다만 그런 비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이나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과 비교해 크게 무거운 것같지도 않다.

이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다면 오히려 외교와 국민통합과 관련해서일 것이다. 그의 외교 감각은 별로였다.독도를 돌출방문해 일본과 적대 관계를 만들고 친미(親美) 일변도로 나아가 중국 등 주변국가들과 소원해졌다.

퇴임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인사에 대해 모른다고 말했지만 이를 액면대로 믿을 국민은 거의 없다. 이 대통령은 그렇지 않아도 파벌과 연줄이 난무한 한국사회에서 특정 대학 출신과 특정 교회 출신을 선호한 나쁜 선례를 만든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 편파 인사로 각 조직의 분위기를 해치고 직원들의 반감을 산 점을 이 대통령은 간과한 것같다.

이 대통령의 치적중 하나인 4대강 사업에 대해 감사원은 ‘부실’을 지적했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벌인 세빛둥둥섬 등 대형사업의 부실문제를 검찰에 고발했다. 4대강 부분도 여러 곳에서 시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 우려된다. 아무쪼록 별 일 없이 전직 대통령이 강변에서 평화롭게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고 싶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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