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0만 중국동포를 버리는가"

국적회복 주도 서경석 목사 "고향서 살 권리 줘야"
  • 등록 2003-11-16 오전 11:06:46

    수정 2003-11-16 오전 11:06:46

[조선일보 제공] 외국인 불법체류자 자진출국기한을 하루 남겨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는 5000여 명의 중국동포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막 “재중동포에게 국적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국적법 제정이 위헌”이라는 요지의 헌법소원을 낸 참이었다. 이윽고 개량 한복을 입은 자그마한 체구의 중년 남자가 헌법재판소 정문을 통해 걸어나오자 장내는 일순간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아, 저기 목사님이 오신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를 얼싸안더니 번쩍 들어 헹가래를 치기 시작했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 조선족교회의 서경석(徐京錫·55) 담임 목사는 이날 중국동포들을 대표해 헌재에 헌법소원서를 제출했다. 서 목사는 전날에도 중국동포 5000명을 이끌고 과천 정부 청사를 방문, 국적 획득 신고 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중국동포들이 이번 헌법소원을 통해 말하려 하는 것은 중국인으로 살더라도 ‘선택’에 의해 살고싶다는 것”이라며 “중국동포들에게 국적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동포들은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수탈을 피하기 위해 중국 땅으로 이주해 광복 이후 돌아오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며 “이들이 스스로 중국국적을 취득한 것이 아니기때문에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정부는 일제강점의 피해자들인 중국 동포들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으나 단 한 번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며 “정부가 중국동포들이 고향에 돌아올 권리를 보장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하나 이를 방기하는 입법 부작위 위헌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립유공자나 합법체류자들의 경우에만 중국 동포들의 국적취득을 허용하고 있는 법무부의 현 지침에 대해서도 “불법체류의 원인자체가 정부의 차별적인 정책이므로 이러한 지침은 중국동포의 평등권·국적선택권·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동포들의 이러한 요구를 단지 한국 체류기간을 늘리기 위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그들의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동포들이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다만 ‘고향에 와 살 권리를 돌려달라’는 것 뿐”이라고 했다. 서 목사는 “나 역시 지난 9월 중국 옌벤(延邊)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그들에게 ‘민족적 주체성을 가지고 잘 살라’고 이야기해 왔다”고 했다. “그러나 직접 가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지요. 중국동포 사회 자체가 붕괴 위기에 처해 있었거든요. 중국동포 사회 내에 급속한 한족화(漢族化) 바람이 불고 있었고 어린 아이들은 한국어를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200만 중국동포가 사라져버리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했다. 그는 “동포사회를 유지하는 길은 그들이 한국어를 지키도록 하는 것밖에 없다”며 “한국국적이 보장되면 그들도 어떻게해서든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것이라고 생각해 이번 일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경실련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던 서 목사는 지난 1996년 제 15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마, 다시 시민운동가로 돌아왔다. 조선족교회 담임목사를 맡은 것은 지난 1999년. 그는 “조선족교회에는 별로 일이 없을 줄 알고 목사직을 맡았다”며 “교회가 자그마하니 주말에만 목회활동을 하고 주중에는 시민운동에 전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며 웃었다. 서 목사와 4000여 명의 중국동포들은 이날 오후 한강시민공원 둔치에서 국적회복촉구 예배를 가진 후 조선족교회와 새문안교회 등 서울시내 10여 개 교회로 흩어져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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