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연기금과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 최고투자책임자(CIO)들이 미래의 자본시장을 이끌어가는 주역으로 전공 상관없이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인재를 뽑고 싶다며 입을 모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현재 대부분 CIO들은 경영·경제학과를 전공하고 나서 해외에서 경영대학원(MBA) 과정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업계 수장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이처럼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투자자산 범위가 무한대로 확장되면서 결코 전공이라는 테두리 안에 지원자를 가둘 수 없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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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올해 신입직원을 뽑은 과학기술인공제회를 비롯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들은 채용 공고에 ‘전공 무관’을 내건다. 다른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블라인드 채용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학교는 물론 성별·연령·가족관계 등을 평가항목으로 두지 않는다. 다만, 해외투자를 위해 어학 자격증은 필수인 경우가 많고, 외국어 가능자나 금융 관련 자격증 소지자는 우대하고 있다.
경력직 직원들도 자격요건은 비슷하다. 당연히 실무경력은 있어야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 지원자를 까다롭게 제한하는 조건은 없다. 시장이 커지고 투자자산도 다양해지는 만큼 큰손들은 전 분야에서 활약하는 창의적인 전문 운용역을 눈여겨보기 때문이다.
한종석 경찰공제회 CIO는 “베트남과 인도 등 동남아 시장이 주목받는 점을 고려해 지정학적 리스크가 인도 증시에 미친 영향을 연구했던 지원자와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자원화 사업을 이끈 대기업 출신 지원자를 선발했다”며 “자산마다 리스크가 무엇인지 제대로 판단하려면 전문인이 필요하니까 앞으로도 각 분야에 특화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 뽑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다양한 경험 쌓은 창의적 인재 선호”
이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IT 관련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이공계열 출신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에는 건축공학과나 도시공학과, 인프라 투자 관련해선 재료공학과 출신 인사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는 추세다.
이제 상경계열 출신의 전문 운용역이 업계를 주도한다는 것은 옛말이다. 지금은 개성이 뚜렷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아본 인재가 주목받는 시대다. 또한, 경영·경제학과 전공자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서 한 분야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를 원한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이도윤 노란우산공제 CIO도 “경영·경제학은 이론을 배우는 거라 다른 사람보다 출발이 유리할 수는 있지만, 비전공자들도 실무를 담당하며 충분히 배울 수 있는 부분”이라며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자산운용도 잘할 수 있어서 학과나 학교는 전혀 필요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 CIO는 “경영학과를 졸업해서 MBA 받기도 했고 자격증도 따봤지만, 실제로 전쟁터에 나가보니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며 “시야를 넓혀서 열린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려는 태도만 갖춰져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