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예린 기자] 규제 ‘그레이존(회색지대)’에 있는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정책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벤처캐피탈(VC) 업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당장 정책에 따라 사업 지속성 여부가 불투명해질 수 있지만 소비자의 반응이 뜨거운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규제 완화를 타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덕이다.
| 서울 중구 한 병원에서 의사가 코로나19 확진된 환자와 전화하며 비대면 진료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
최근 VC 업계가 꼽는 급성장하는 스타트업 분야는 비대면 의료다. 오미크론 대유행에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재택 치료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비대면 진료와 처방약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닥터나우가 대표 사례다. 닥터나우의 2월 한달간 이용자와 앱 다운로드 건수는 각각 90만명, 60만건을 돌파했다. 서비스를 처음 출시한 2020년 12월 기준으로는 누적 이용자 수는 230만명, 누적 앱 다운로드는 140만건을 넘었다. 케어랩스의 ‘굿닥’, 비브로스의 ‘똑닥’, 라이프시맨틱스의 ‘닥터콜’ 등 다른 비대면 진료 플랫폼도 폭풍 성장 중이다.
덩달아 기존 집단과의 충돌 우려도 커진다. 비대면 진료는 2020년 12월 개정된 감염병 예방법에 근거해 한시적으로 도입됐다. 해당 법에 따르면 심각단계 이상의 감염병 위기 경보 발령 시에만 원격의료를 허용한다. 현재는 의약사단체가 크게 반발하지 못하지만, 감염병 사태가 진정되면 해당 비즈니스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신사업에 대한 해석이 마무리되지 않은 뮤직카우 등 조각투자 플랫폼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금융당국은 뮤직카우의 저작권료 참여청구권 거래에 대해 증권성 여부가 있는지 검토 중이다. 결과에 따라 제도적 보완을 거쳐 정상 운영되거나 영업 정지될 수 있다. 미술품에 투자하는 아트앤컴퍼니·테사, 소에 투자하는 뱅카우, 명품시계나 와인에 투자하는 트레져러 등 조각 투자 비즈니스 플랫폼 업계와 여기 발을 담근 VC들이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NFT(대체불가토큰) 비즈니스 플랫폼도 금융당국이 NFT의 증권성 여부를 검토 중인 만큼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조각투자 플랫폼에 투자한 VC 관계자는 “뮤직카우가 저작권이 아닌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을 제시한 것처럼 업체마다 유사수신행위 범위를 피해 우회적으로 투자 중이다. VC들도 법률적 검토를 거쳐 투자한 것”이라면서도 “뮤직카우에 대한 금융당국 해석이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리스크 감수하고 ‘배팅’하는 이유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존 플랫폼에 대해 펀드레이징 중인 VC들은 적지 않다. 상황을 민감하게 지켜보면서도 기대감은 버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신선한 사업모델이 MZ세대에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7~8년 내다보고 투자하는 VC 입장에서는 당장 법률이 시장 변화 속도를 못 따라가도 종국에는 뒤따를 것이란 믿음에 배팅한다는 것. 원격의료 비즈니스의 경우 이미 비대면 시대가 도래했고 코로나가 종식돼도 대면으로 돌아가긴 힘들 수 있다는 점에서, 특정 단체의 반발이 대중이 원하는 서비스를 막을 순 없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규제 불확실성이 걷히면 해당 기업들의 몸값이 급등할 것이란 점도 선제적 투자의 배경이다. 물론 장밋빛 전망에 힘이 실려도, 정책적 변화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한 VC업체 관계자는 “토스의 경우 사업 초기 국내 VC는 전자금융업에 투자할 수 없다는 관련 법 때문에 알토스벤처스 같은 외국계만 투자할 수 있었으나, 이듬해 규제 완화로 국내 VC들도 투자가 가능해졌다”며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사업 중인 휴이노와 카사 등도 정책이 시장을 따라간 최근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각투자는 치솟은 부동산 가격에 자가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없는 MZ세대들이 대체투자 차원에서 주식과 코인에 이어 적극 참여하는 시장”이라며 “사회 전반의 흐름 자체가 그렇기때문에 조각투자든 원격진료든 잠시 진통을 겪어도 몇 년 후 토스처럼 허용될 수 있다고 보는 VC들은 당연히 투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증권성 논란에 얽힌 스타트업에 투자한 VC들의 경우 신고 절차만 합리적으로 마련된다면 금융당국의 감시망에 포함돼 합법적인 비즈니스가 가능해지는 것이 낫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정권 교체에 따른 기조 변화 기대감도 감지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경제발전을 정부 주도가 아닌 자유시장경제에 맡기겠다고 선언한 만큼, 기존 집단과 충돌하거나 법률 해석이 모호한 플랫폼에 대해 일단 비즈니스를 허용하고, 이후 소외되거나 피해를 본 집단에 후속 조치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다른 VC업체 관계자는 “시장 자율에 맡긴다는 기조가 윤석열 정부의 핵심”이라며 “기존 질서를 파괴하면서 혁신을 이끌어내는 스타트업에 대해 투자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