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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민은 왜 트럼프를 증오하나
그간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방문이 이뤄지지 못한 건 사실 ‘자업자득’으로 봐야 한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7월 유럽순방 기간 영국을 ‘실무방문’했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보인 행동 하나하나가 영국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언론재벌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절친으로 잘 알려진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타블로이드 일간 ‘더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 ‘정상’인 메이 총리를 사실상 깎아내리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프트 브렉시트’ 계획안에 반발해 사퇴한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외무장관을 “훌륭한 총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는가 하면, “영국이 어떻게든 유럽연합(EU)과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면 미국과 수익성 있는 무역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영국 입장에선 사실상 ‘내정간섭’ 수준으로 받아들일 만한 발언이었고, 정가는 발칵 뒤집혔다. 국민 사이에서 반 트럼프 정서가 최고조에 달한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더선 인터뷰는 가짜 뉴스”라고 해명했으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트럼프 대통령의 실무방문 나흘 동안 벌어진 항의시위만 해도 100회가 넘는다. 수도 런던에 모인 항의 인파만 25만명(주최 측 추산)에 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버리라’는 뜻의 “덤프 트럼프” 구호가 난무했고, 런던 의회 상공에는 기저귀를 찬 20피트(약 6미터) 크기의 거대한 ‘베이비 트럼프’ 풍선이 띄워졌다. 당시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지불한 비용만 1800만파운드(270억원)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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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영국 내 ‘반 트럼프’ 정서가 여전하다는 데 있다. 시위대 측은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차별, 편견, 여성 혐오, 외국인 혐오 등을 대변하는 인물로, 그의 정책은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대규모 시위를 예고한 상태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방문이 이뤄지는 건, 그만큼 두 나라 사이에 작지 않은 이슈들이 워낙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백악관 측은 “이번 국빈방문은 변함없고 특별한 미국과 영국의 관계를 재확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메이 총리는 “영국과 미국은 깊고 오래 지속되는 파트너십을 갖고 있다”며 무역과 투자, 안보 등에서 긴밀한 양국 관계를 강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봤다. 특히 미국은 영국의 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 이후 양국 간 관계설정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는 긴급히 풀어야 할 숙제로 본다.
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국빈방문 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예방하는 한편, 메이 총리와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부인 멜라니아 여사도 동행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국빈방문 직후인 같은 달 6일 프랑스로 건너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도 ‘대좌’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이뤄지는 이번 정상회담이 이른바 ‘대서양 무역전쟁’ 발발 우려가 커진 가운데 이뤄지는 만큼, 미국과 EU 간 관세문제를 집중 논의할 것이라는 게 양국 언론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