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 올라가는 길에 커피를 한 잔 샀다. 이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다. 아기와 함께 커피숍? 꿈도 못 꿀 일이다. 뜨거운 커피에 혹여라 아기가 데일까 노심초사할 바엔 안가는게 낫다. 적당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옷차림과 커피 한 잔이 너무도 그리운 1년3개월이었다.
“저 어린걸 놔두고 회사에 정말 갈 수 있겠어?” “외벌이도 아껴쓰면 살만해~그냥 관둬~” 돌쟁이 아기를 두고 복직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여자는 아기를 낳으면 육아에만 전념하는게 당연한데 돈이 궁해서 어쩔 수 없이 회사에 나가는 사람을 보는 듯했다. 나는 겉으로는 “그러게요~”라고 맞장구쳤지만, 내심 복직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단언컨대 31년간의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을 꼽으라면 ‘육아’다. 대학가는 것도 힘들었고, 취업은 더 힘들었다. 그치만 그런 것들은 나 혼자 힘들면 그만이다. 내 기분이 꿀꿀하면 술 한 잔 마시고 드러누워 자면 됐다. 육아는 달랐다.
그 전까지의 내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내가 아무리 지쳐도 때되면 아기 밥은 챙겨야 하고, 졸음이 쏟아져도 애가 울면 들쳐엎고 달래야했다. 아기의 웃음 한 방이면 피로가 싹 사라진다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예쁜건 예쁜거고, 힘든건 힘든거였다. 아무래도 난 엄마되려면 아직 멀었나보다.
이르면 6시반에서 늦어도 8시 아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나의 아침은 시작된다. 이유식을 준다. 반은 먹고 반은 사방군데에 짓이겨놓는다. 어지르면 닦고, 저쪽가서 어지르면 또 닦는다. 설거지를 하려고 하니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안아달란다.
결국 설거지는 포기다.
내 밥? 아기가 남긴거 먹거나 서서 국한그릇 마시면 양반이다. 이런저런 장난감으로 놀아주다보면 또 점심시간. 밥 때는 왜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하루 세 끼 뭐해먹일지 고민하는게 기사쓰는것보다 훨씬 어렵다.
밥먹이고 나니 슬슬 졸려한다. 재우는데 하세월이지만 어쨌든 성공. 나도 자고 싶지만, 할 일이 산더미다. 쌓인 설거지와 청소를 한다. 최대한 조용하고 신속하게. 2시간여 동안 치우고 나면 아기가 깬다.
9시쯤 간신히 아기가 잠들면 내 일과는 또 시작이다. 쌀을 불리고 야채를 다지고 고기의 핏물을 제거한다. 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눌러붙지 않게 저어야 맛깔난 이유식이 완성된다. 밤 11시반. 겨우 누웠다. 막 잠드려던 찰나에 아기가 깨서 운다. 아기를 낳은 후 소원이 하나 있다면 4시간 연속으로 잠 한 번 늘어지게 자보는거다. 밤중 그렇게 서너번을 깨고 다시 재우는 동안 날이 밝아온다. 또 하루가 시작된다.
‘얘야, 잠시 내 무릎을 베고 누워라. 좀 쉬렴. 엄마는 네가 있어 기쁜 날이 많았으니.’(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中) 우리에게 엄마는 이런 존재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존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엄마’를 떠올리면 모두가 눈물을 글썽이는건 아마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인 희생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때문일거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이제 막 아기를 낳았을 뿐인데 하루아침에 희생의 대명사가 돼야만 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기가 똥그란 눈으로 나만 쳐다보고 있는게 시리도록 두려웠다.
지금까지 모든 삶의 중심은 ‘나’였는데 순식간에 그 대상이 바뀌었고, 세상은 그걸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다. 아기를 낳는게 상상 이상의 책임을 요하는 일이라는걸 아기를 낳고서야 알았다. 그래서 나는 잠시나마 회사로 ‘일탈’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전업맘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는 무시무시한 ‘워킹맘’의 삶이 기다리고 있지만, 어쨌든 ‘다인이 엄마’가 아닌 ‘송이라 기자’인 지금이 반갑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