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만 할 수밖에 없는 불법체류자의 비극

연극 '굴레방다리의 소극'
고통스런 진실 외면하는 현대인 풍자
30일까지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 등록 2014-03-17 오전 7:05:00

    수정 2014-03-17 오전 7:05:00

연극 ‘굴레방다리의 소극’ 한 장면(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서울 북아현동의 한 허름한 시민아파트. 한 사내가 망사 스타킹과 붉은 립스틱을 칠하고 여자 흉내를 낸다. 게다가 사내의 아버지가 하는 바보 연기는 코미디언 수준이다. 중국 연변에서 밀입국한 세 부자는 집에서 ‘연극’만 하며 산다. 서울로 오기 전 고향에 있었던 할머니의 죽음에 관한 얘기들이다. 세상과 교류를 끊은 지는 오래됐다. 이들에게 현실은 없다. 과거를 들춰 서로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세상을 버티는 유일한 힘이다.

‘기괴한 굿판’을 만든 건 사다리움직임연구소다. 연극 ’굴레방다리의 소극’은 ‘보이첵’ 등에서 인간의 본성을 새로운 형식미로 펼쳐놓아 공연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온 극단이다. 뮤지컬 ‘원스’로 유명해진 작가 앤다 월시가 쓴 ‘윌워스의 소극’이 원작이다. 2007년 영국 에든버러페스티벌에서 퍼스트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를 사다리연구소 소장인 임도완이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국내에는 2008년과 2011년에 소개돼 호평을 샀다.

제목으로 돼 있는 ‘소극’(笑劇)은 ‘함정’이다. 작품 속 웃음은 쓰다. 배우들이 엉뚱한 대사와 우스꽝스러운 분장으로 터트린 폭소 속에는 비극이 흐른다. 강제출국 당하지 않게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아버지는 두 아들을 감금하고 연극만 하라고 강요한다. 무거운 현실에 시간이 지날수록 세 부자의 희극은 설 자리를 잃는다. 살기 위해 연기하는 아버지와 그의 강압을 벗어나려는 두 아들 사이의 해체는 처참하다. 현실 속 불법체류자의 그늘이 겹치고,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듯 살아가는 현대인에 대한 풍자도 보인다.

임도완 연출은 “우리는 왜곡된 것을 알지 못하는 게 아니라 외면하며 살아왔다”며 “고통스러운 진실을 은폐하는 작품 속 극중극을 통해 우리의 부조리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대에는 권재원·장성원·이중현·김다희가 선다. 극중극 형식이라 배우들은 1인다역으로 열정을 쏟아낸다. 아버지의 폭압에 억눌려 꿈조차 꾸지 못하는 큰아들 역을 연기하는 장성원은 “정말 힘든데 하고 나며 속이 시원해지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02-763-8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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