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힘들어서"..메스 대신 청진기 든 외과의사

일차의료 절반이 '외과' 간판없이 활동..4년 공부 '포기'
저출산·경기불황에, 전문진료 대신 백화점 진료 선택
비전문적 진료 환자에도 '악영향'..향후 가속화 전망
  • 등록 2013-09-05 오전 6:05:00

    수정 2013-09-05 오전 6:05:00

[이데일리 장종원 기자] 서울의대를 졸업한 50대 의사 A씨. 한때는 촉망받는 산부인과 의사로 숱한 새생명의 탄생 순간을 지켜봤지만 지금은 아니다. 대형산부인과병원의 등장 등 의료환경이 급변하면서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경기도의 한 소도시에서 감기환자, 물리치료 환자 등 다양한 환자를 보는 일반의원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에서 외과의원을 운영하던 60대 B씨. 그는 몇년 전 병원 간판에서 ‘외과’라는 명칭을 지웠다. 외과만으로는 환
동네의원 개설한 전문의 수 대비 전문의 간판 포기한 의사 수(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가 너무 없어 간호사 월급 주기도 어려울 정도로 경영이 악화되서다. B씨는 요즘 감기환자 위주로 진료를 본다. 응급실이 없어 한밤에 찾아온 교통사고 응급환자를 수술해온 ‘외과전문의’로서의 자부심은 이제 과거의 무용담이 됐다
.

의사가 ‘전문의’라는 간판을 달기 위해서는 의과대학 6년 과정외에도 인턴, 레지던트과정 거쳐야 한다. 보통 4~5년이 걸린다. 그런데 빠른 사회진출을 포기하고 힘들게 딴 ‘전문의’ 간판을 버리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 TV 의학드라마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역할로 주목받는 외과 의사,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특히 많다.

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일차의료 시장에 진출한 외과의사 2042명 중 ‘외과’ 간판을 달지 않고 개업한 의사는 1024명(50.14%)으로 절반이 넘었다. .

산부인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30명의 산부인과 의사 중 607명이 ‘산부인과’ 간판 말고 일반 ‘의원’으로 진료를 하고 있었다. 가정의학과 전공의들도 2477명 중 1722명(69.51%)이 일반 의원으로 개업했다

어렵게 전문의 자격을 딴 의사들이 감기, 배탈 등 백화점식 진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전문의 간판을 포기하는 이유는 저출산·고령화와 의사 공급 확대 등으로 인해 전문병원의 경쟁력이 사라진 때문이다. .

산부인과는 저출산으로 신생아 수가 줄어든데다, 분만 전문 병원이 의료시장을 주도하면서 소규모 산부인과는 운영이 힘들어졌다. 외과 역시 유방외과, 항문외과 등 특수 진료 병원들만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산부인과 관계자는 “임산부들이 큰 병원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 분만 과정에서 혹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에 대한 부담, 낮은 의료수가로 산부인과 간판을 포기하는 의사들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동네 산부인과의 몰락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내과나 안과, 정형외과 등 의료수요가 꾸준한 전공분야 전문의들은 상황이 다르다. 내과 전문의는 4156명 중 123명, 정형외과는 1868명 중 57명, 안과는 1421명 중 6명만이 전문의 간판을 포기했다. ‘불패신화’를 자랑했던 의료시장에도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의료업계에선 어렵게 육성한 전문의가 전문진료를 포기하는데 따른 자원 낭비와 백화점식 진료에 인한 전문성 부족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재용 경북의대 교수는 “국민들이 큰 병원을 선호하면서 일차의료인 동네의원이 점차 위축되고 있다”며 “국민들의 인식 개선이 없이는 어떠한 정책 대안으로도 해결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수술을 집도하는 드라마속의 화려한 외과의사는 현실에선 일부에 그치고 있다. (사진 : kbs 굿닥터의 수술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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