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믿을 수 없는 공시 누가 책임지나

  • 등록 2013-01-10 오전 6:30:00

    수정 2013-01-10 오전 6:30:00

[이데일리 박형수 기자]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자 대통령으로 기록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약속’이라는 단어가 대통령을 뽑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정도로 현대 사회는 불신의 벽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상장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7일 키스톤글로벌은 밀양풍력발전소 건설공사 수주 계약이 해지됐다고 공시했다. 해지 금액은 679억원으로 2011년 매출액의 60%가 넘는다. 2008년 4월 키스톤글로벌의 전신인 한신디앤피는 경남신재생에너지와 밀양풍력발전소 건설공사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계약 기간은2009년 9월30일까지였다.계약 규모는 당시 매출액 62억원의 10배가 넘었다. 공시는 상장사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약속하는 수단이다. 투자자들 역시 여러 정보 획득 수단 가운데 공시를 가장 신뢰한다. 공시를 통해 상장사가 공급계약 사실을 알렸을 땐 매출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한신디앤피의 공시를 믿었던 투자자들은 발등 찍혔다. 계약 체결 당시 2009년까지 완료하기로 했던 공사였으나 4년이 지나서야 해지 사실을 통보했다.

하지만 당시 계약을 체결한 경영진은 이미 떠났다. 이후 경영권을 인수한 현 경영진에 계약 해지 책임을 묻기도 힘들다. 해지 공시가 나오고 주가는 장 중 한때 10% 이상 급락했다. 비록 현재 사업과 연관이 없는 계약 해지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하락세가 잦아지기도 했지만 이미 손실을 보며 주식을 팔아버린 주주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다. 현 경영진은 이전 경영진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공시라 항변할 것이고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는 공시는 상장사의 책임이며, 계약 건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사실 모두 일리가 있다. 하루에도 수백개의 공시가 올라오는 데 한정된 직원이 계약서를 검증하고 상대방이 유령회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 승인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애꿎은 투자자들의 피해를 줄이려면 경영진이 공시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전히 공시를 주가 부양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도 적지 않다. 때문에 제재를 강화하는 방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한국거래소는 해지 공시 지연을 이유로 키스톤글로벌에 대해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예고했다.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되면 하루 동안 거래가 정지된다. 솜방망이 처벌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오래 전부터 증권업계에서는 투자자의 피해를 고려해 공시 위반 상장사의 경영진에게 직접 책임을 묻는 형태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계약 해지 사례를 보면 계약 상대방이 불분명하다. 한신디앤피의 계약 상대방은 계열사였고 최근 알앤엘바이오도 ‘Haitai Family’와 체결한 공급계약이 해지됐다고 공시했다. 계약 체결 당시 경영진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업다 해도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셈이다. 지난 2011년 국정감사에서도 불성실 공시법인 제재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한 달 동안 15개 상장사가 공급계약 해지를 알리는 공시를 했다. 감독당국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이쪽 저쪽의 눈치를 보는 사이에 투자자들의 피해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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