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은행권 구제금융 지원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전면 구제금융 요청 여부는 또다시 오리무중이 됐다. 그러나 스페인을 둘러싼 잠재적 악재들은 여전한 상황이라 전면 구제금융이 늦춰질 경우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재정긴축에 은행 지원부담도 줄었다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던 이날 올리버 와이만의 스페인 은행권에 대한 재무 건전성 점검(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는 한 마디로 고무적이었다.
일단 조사 대상이 된 14개 은행들이 최악의 경기 하강국면에서 살아남기 위해 확충해야할 자본 필요액이 593억유로(원화 85조301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지난 6월 점검 당시 추정했던 620억유로보다 줄었고, “600억유로는 될 것”이라던 스페인 정부 추정보다도 적었다.
특히 스페인의 대표적인 6대 은행인 방코 산탄데르와 BBVA, 라까익사방크, 쿠트사방크, 방코 사바델, 방킨테르를 포함한 총 7개 은행들은 최악의 경제상황 하에서도 중앙정부로부터 구제금융 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나머지 7개 은행들은 자본금을 더 쌓아야 한다고 추정됐지만, 593억유로 가운데 대부분인 490억유로는 부실로 인해 이미 국영화된 4곳의 은행들에 한정됐다. 이중 247억유로는 방키아그룹 한 곳에 집중된 것이다.
◇ 은행 구제금융 지원 축소설 ‘솔솔’
이같은 긍정적인 평가 덕에 벌써부터 스페인이 지난 6월 유럽연합(EU)으로부터 약속받은 최대 1000억유로 규모의 은행권 구제금융 지원 규모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593억유로라는 자본 부족액도 아주 우려스러울 정도가 아니지만, 이들 부족액 중 일부는 은행들이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과 자산 매각 등으로 직접 마련할 예정이라 스페인 정부가 EU로부터 받아와야할 구제금융 자금은 더욱 줄어들 수 있게 된다.
실제 이날 테스트 결과 발표 직후 이를 통과하지 못한 방코 포풀라르 등 일부 은행은 곧바로 “정부 지원없이 홀로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연체된 부동산 프로젝트 관련 대출 등 부실자산을 정부가 세울 배드뱅크에 전이시킬 수도 있고, 일부 선순위 채권자들이 손실을 분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날 익명을 요구한 한 스페인 정부 관료도 “이같은 자본 확충액은 당초 추정 때와 비슷한 수준이긴 하지만, 그동안 정부가 취했던 일련의 조치들 덕에 은행 지원을 위해 유럽연합(EU)측에 요청할 구제금융 지원액은 크게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최종적인 구제금융 지원액은 550억~600억유로 수준이 될 것”이라며 “그러나 스페인은 이보다 더 적은 금액을 요구할 수도 있으며 그럴 경우 400억유로 언저리가 될 지도 모르겠다”고 점쳤다.
◇ 전면 구제금융 지원요청 할까, 말까
이제 남은 쟁점은, 스페인 정부가 전면 구제금융 지원 요청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앞서 스페인 정부는 예산 긴축안과 은행권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토대로 전면 구제금융 지원 요청 여부와 필요할 경우 그 규모 등을 산정하겠다고 했었다.
긴축안과 이번 은행권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최근 급반등했다가 다시 6% 아래로 내려간 국채금리 등을 종합해 보면 전면 구제금융 지원 가능성은 불과 얼마 전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스페인 정부가 시장 반응 등을 지켜보면 좀더 필요성을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스페인의 상황이 좋아졌다고 볼 수도 없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은, 방키아와 까딸루냐 까익사, 노바 가리시아, 방코 데 발렌시아 등 이미 국영화된 은행들은 세액 공제를 감안할 경우 자본 확충액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방키아는 이 경우 60억유로 정도 자본 부족액이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현재 투기등급(정크본드) 바로 한 단계 위인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을 재평가할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아울러 새해 긴축 예산안에 대해 비현실적인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년 경제가 0.3% 후퇴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나온 것인데, 시장 전문가들은 대체로 1.2~1.5%의 마이너스 성장을 점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