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노동조합의 재정과 회계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나서면서, 미국의 노조 회계 공개 등의 내용이 담긴 ‘랜드럼-그리핀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 강력한 노조 규제법인 랜드럼-그리핀법은 1959년에 제정됐는데, 법이 제정된 배경에는 연이은 거대한 노조 부패 사건으로 인한 여론의 분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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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국회 등에 따르면 랜드럼-그리핀법은 노조의 회계 내용을 정부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담고 있다. 노조는 회계 감사를 받아야 하고, 회계 내용을 보고하는 연차회계보고서를 노동부 장관에 제출해야 한다.
연차회계보고서에는 노조의 자산과 부채, 수령금과 그 출처, 총액 1만달러(약 1288만원) 이상을 수령한 조합 임원과 노조 직원에게 지급된 봉급과 기타 지불금 등이 담겨야 한다. 임원이나 조합 직원, 조합원에 대한 총액 250달러(약 32만원) 이상의 직·간접적인 대부금 등의 정보도 포함돼야 한다.
미국에서 이렇게 강력한 노조 규제법이 제정된 이유는 거대 노조의 부패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며 여론이 분노한 탓이다.
1953년엔 미국 샌프란시스코항의 항만노조 부패 사건이 발생했다. 이곳의 서부항만노조는 조직폭력배와 결탁, 부두의 노무자 공급을 독점하며 각종 비리와 폭력을 저질렀다. 당시 항만노조는 부두를 장악한 뒤 노동자를 착취했다. 또 노조의 비리를 비난할 경우 일감을 아예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폭행을 당해 죽기도 했다.
1957년엔 아이리시맨의 지미 호파가 연루된 미국 트럭운수노조 비리 사건도 터졌다. 노조가 마피아의 폭력을 동원하는 대가로 조합자금을 제공하고, 돈세탁을 도와주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노조를 장악한 지미 호파는 조합공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기도 했다. 호파는 당시 미국 정부와 각을 세우며 200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인물이지만, 1975년 알 수 없는 이유로 실종된다.
강력한 노조 규제법 이후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미국의 노조는 급속도로 힘을 잃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노조 내부의 선거와 재정 상태를 외부에서 감독할 수 있게 됐고, 단체행동도 대폭 제한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조법에도 노조의 회계 감사와 관련한 내용이 있지만, 회계감사가 공인회계사와 같은 자격을 갖춘 외부 인사가 맡아야 한다는 내용도, 정부에게 제출할 의무나 조합원에게 공표할 의무도 없다. 1997년 이전에는 정부가 노조에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재정상태를 조사할 수 있는 조항이 노동법에 명시돼 있었지만, 권위주의 정권 시절 노조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비판으로 대폭 축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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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입장문을 통해 “노동조합의 독자적인 회계감사권을 박탈해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라며 “실제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