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글로벌 공급망 재편' 위기를 기회로

  • 등록 2022-09-02 오전 5:00:00

    수정 2022-09-02 오전 5:00:00

[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물가급등과 경기악화는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세계적인 문제다. 원인은 세계화라는 국제정치질서의 변화에 있고, 그 변화에 취약한 나라일수록 고통은 크다. 상품 및 자원의 교역과 자본 및 노동의 이동의 자유를 추구하는 세계화 질서 덕분에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중국이 경제력를 무기화하면서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자, 세계화를 주도한 미국은 아예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는 전략으로 대응했다. 여기에 천연가스를 무기화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더욱 빨라졌다.

이에 따라 미국은 예상보다 자금이 많이 몰리면서 달러화가 초강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물가안정을 위해 적극적 고금리정책으로 전환하면서 더욱 그렇게 됐다. 미국 정부도 자국 기업의 복귀(리쇼어링)는 물론 동맹국 기업의 미국 투자(프렌드쇼오링)를 촉진했다. 이러면서 미국은 경기악화에 따른 고용의 감소를 상쇄할 정도로 투자가 늘어 구인난을 겪고 있다. 반면, 중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광물 자원 부족으로 인한 고통은 작지만 금년도 경제성장률은 목표치 5.5%에서 3%로 급감하고 실업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반도체 등에 대한 경제 제재와 첨단 산업의 성장 둔화보다 국내총생산의 30%를 차지하는 부동산이 뿌리부터 흔들리는데 기인하는 바가 크다.

유럽은 미국과 중국보다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으로 인한 고통이 크다. 특히 유럽 최대 경제강국인 독일은 더 심각해 유럽의 병자로 다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독일의 금년도 물가상승률은 10%로 폭등하고 경제성장율은 1%로 폭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난방이 중단되고 가로등마저 꺼지는 추운 겨울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가장 큰 이유는 산업구조가 세계화 시대에 맞춰져 경제안보에 취약한데 있다. 독일은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탈원전에 집착해 에너지 자립도가 떨어지는 반면,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 1위국일 정도로 대외 의존도가 높다.

한국은 물가와 경기가 미국과 유럽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당초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물가상승률은 5%, 경제성장률은 2.5%로 전망된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등에 대한 수출 통제와 중국의 요소수 수출 통제 등을 겪으면서 에너지와 식량 확보의 중요성을 자각했고, 물류 혁신이 빠르게 진행된 덕분으로 보인다. 또한 국제정치질서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면서 나름대로 글로벌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세계화 시대 초기에는 중국으로 대거 진출했다가, 중국이 사드보복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차별을 하면서 베트남 등으로 생산 기지를 옮겨갔다. 그 결과 중국과 베트남에 대한 투자는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최고로 많은 나라가 됐다.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한국은 협력적이다.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를 안보동맹을 넘어 경제기술동맹으로 격상했다. 한국의 자동차와 2차전지 대기업들도 미국으로 대거 옮겨가 최대 투자자가 됐다. 그 결과 올해 벌써 한국은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오링에 따른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 가장 기여한 나라가 됐다. 하지만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는 증가하지 않아 결국 한국의 일자리는 유출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국판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이 전략적으로 필요한 산업에 대한 기업의 투자에 대해 미국처럼 세제와 지원금 등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산학연 협력체계를 강화해 기술개발과 숙련 인력 확보를 용이하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국제질서가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만큼 한국의 글로벌 공급망 정책은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 공급망의 재편은 국가들 사이의 국익이 충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핵심은 식량과 원자재 등의 공급망에서 한국의 허점을 찾고, 미국은 물론 중국 및 러시아와 유럽 등을 참고해 허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며, 민관과 노사가 힘을 합쳐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는 취약하지만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부문의 경쟁력를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 반도체 덕분에 미국과 중국에 대한 한국의 위상이 올라간 것처럼 강점을 가진 산업이 많을수록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과정에서 한국의 발언권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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