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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만년필은 고급 문화나 취미 활동으로 쓰는 게 아니다.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이 SNS에서 ‘소통의 도구’로 만년필을 더 많이 찾는다.”
코난 도일과 푸치니는 파카 만년필을, 닉슨 대통령은 쉐퍼 데스크펜을, 박목월 선생은 파카 45를 사용했다. 100여 년을 넘게 역사와 함께해 온 남다른 펜.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 시대에도 젊은이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만년필’이다.
국내 최초로 2007년 서울 을지로에 ‘만년필연구소’를 연 박종진(48) 소장은 초등학교 3학년때 아버지가 쓰시던 만년필을 보고 매력에 빠졌다. 이후 만년필 사랑은 40여 년 간 이어졌다. 평일에는 평범한 회사원이다.주말에는 만년필을 좋아하는 이들과 지식을 공유한다. 직접 만년필도 수리해준다. 2005년부터 만년필 동호회 ‘펜후드’를 운영 중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5000명 즈음이던 회원은 현재 3만8000명 가까이 늘었다. 박 소장은 “1년에 두 번 여는 ‘서울 펜쇼’에는 일본이나 멀리 유럽에서도 만년필을 사랑하는 이들이 찾아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만년필에 관한 그간의 연구와 자료들을 모아 최근 ‘만년필 탐심’(틈새책방)을 펴냈다. ‘탐심’은 만년필을 대하는 두 가지 마음을 의미한다. 하나는 깊이 살펴보고 공부한다는 의미의 ‘탐(探·찾다)’이고, 다른 하나는 욕망한다는 의미의 ‘탐(貪·탐하다)’이다. 책은 만년필을 통해 본 역사적 사건과 인간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한다. ‘히틀러는 어떤 만년필을 썼을까’라는 역사적 궁금증을 비롯해 벼룩시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만년필을 구한 개인적 이야기 등 27가지 에피소드를 전한다. 박 소장은 “만년필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다이아몬드나 금·은 장식을 한 만년필은 많게는 수억원을 호가한다”며 “문구점에서 파는 2000~3000원 짜리 저렴한 제품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매로 낙찰된 고가의 펜으로는 1928년 금과 은으로 그린 후 옻칠한 일본 파이롯트사의 만년필이 있다. 낙찰가는 23만9250달러(약 2억 71011만원)였다. 평균적으로 몽블랑 만년필이 가장 비싸고, 가장 오래된 만년필은 1880년대 ‘워터맨 만년필’이라고 한다.
수십년간 그를 이토록 빠지게 한 만년필의 매력은 무엇일까. 박 소장은 ‘다채로운 얼굴’을 매력으로 꼽았다. “만년필에는 여러가지 얼굴이 있다. 하나는 필기구, 다른 하나는 장신구다. 글씨를 쓰더라도 만년필을 통해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직선이 많은 한글이야말로 만년필로 썼을 때 가장 아름다운 문자다. 만년필이 서양에서 만들어졌지만, 한국인들에게 유별나게 애호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천만원짜리나 3천원짜리나 만년필의 원리는 똑같다. 그러니 잉크 한병, 노트 한권, 만년필을 좋아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손쉽게 만년필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