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 `피케티 신드롬`의 이면

  • 등록 2014-05-20 오전 6:01:01

    수정 2014-05-20 오전 6:01:01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단언컨대 근세기 들어 이렇게 핫(hot)한 경제학자는 나오지 않았다.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 얘기다.

그의 책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은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휩쓸고 있다. 또한 주요 언론들은 이 40대 초반의 젊은 경제학자 이름 앞에 ‘신드롬’이니 ‘경제학계 록스타’니 하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마치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연상시키는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불평등이다.

무려 685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피케티 교수의 모국인 프랑스는 물론 미국과 영국, 독일, 일본 등 5대 선진국을 대상으로 200여년간 통계를 집계하고 분석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질러 왔다. 이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자본을 독점하고 있는 부자들만 더 부유해지고 있다”는 진단을 내린다.

결국 “조세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는다면 소득 불균형은 결코 완화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 피케티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누진 부유세를 동시에 도입하는 등 중산층과 저소득층에 돌아가는 국부(國富) 비중을 과감하게 늘리자고 역설한다.

‘마르크스(Marx) 2.0’으로도 불리는 이같은 진보적인 주장이 세계적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 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는 소득 불균형을 잘 보여주는 방증으로 읽힌다.

실제 통계만 놓고 보더라도 미국에서 지난 1975년부터 경제위기 전까지 소득 증가분의 80%를 소득상위 10% 고소득층이 독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에서는 가장 부유한 다섯 일가 재산이 소득하위 20% 전체 재산보다 많고 중국에서도 상위 10% 계층 보유 자산이 전체 자산의 61%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지난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지원으로 이뤄진 연구에서 응용수학자 사파 모테샤리는 소득 불균형이 궁극적으로 문명 붕괴라는 시나리오를 현실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나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엘리시움’ 등 근래 소득 불균형과 빈부 격차가 가져올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다룬 영화들이 사회적 공감을 얻고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빈부 계층간 격차는 지속적으로 커지면서 세대·이념간 갈등으로 번져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세대 갈등과 이념 갈등도 따지고 보면 빈부간 갈등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경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던 진념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도 지난주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의 소득계층간·세대간 갈등은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진 전 부총리 경고처럼 이제 이런 상황을 더이상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득 격차에 따른 갈등은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이는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좀 먹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데일리와 이데일리TV가 다음달 11~12일 이틀간 공동 개최하는 제5회 세계전략포럼(WSF)이 ‘21세기 소통의 위기: 진단과 해법’이라는 주제를 설정한 것도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피케티 교수처럼 급진적이고 다소 비현실적 해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정한 소통이라는 점진적이고 실현 가능한 해법을 통해 다양한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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