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파워]"일은 자기 주체성을 만드는 작업…육아와 병행해야"

김소희 AIG손해보험 부사장 인터뷰
  • 등록 2013-11-25 오전 6:00:00

    수정 2013-11-25 오전 6:00:00

[이데일리 신상건 기자] “여성으로서 일과 육아는 당연히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아는 하나의 주체를 만드는 작업이고 일은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죠. 아이에게 엄마의 손길이 정말로 필요한 시기는 태아부터 초등학생까지 10년에 불과합니다. 100세를 살아가는 요즘 시대에 정말 얼마 안 되는 시간이죠. 나머지 시간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정말 막막한 인생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일과 육아의 양립에 대한 김소희(사진·50) AIG손해보험 재무총괄 부사장의 철학이다. 김 부사장은 우리나라 손해보험업계 최초의 여성 최고재무책임자(CFO)이자 부사장이다. 예산관리와 기획, 투자, 리스크매니지먼트 등 재무관련 업무 전반을 관리하고 있다.

*사진: 권욱 기자
국내 손보업계 최초 여성 CFO이자 부사장

보험업계 내에서도 특히 손해보험업계에서는 여성임원이 드문 편이다. 그만큼 남성 중심 문화가 드세다는 의미다. 김 부사장이 움직일 때마다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어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부담을 느끼기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즐긴다는 게 그의 삶의 방식이다.

“여성 최초로서 무게감이요? 전혀 무겁지 않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 일이 좋아서 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저 말고도 다른 리더들도 많고 또 많은 후배가 그 역할을 해줄 테니까 제가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죠.”

대부분 사람이 삶의 좌우명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좌우명이 없다. 좌우명이라는 원칙에 얽메이다 보면 삶의 즐거움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사고보다는 틀에 박힌 사고를 할 가능성이 커 창의성도 떨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육아는 독립적인 한 주체를 만드는 중요한 과정이며, 자녀를 부모에게 의존적으로 키우는 것은 잘못된 교육이라고 지적했다.

“대학 졸업하고 2년간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잘했던 선택이었죠. 거기서 인간의 삶에 대해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파리에서는 18세 이상의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제도적으로 이렇게 돼 있는 게 아니라 부모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그만큼 자녀를 독립적인 한 주체로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의 제도적인 뒷받침보다 부모 인식 차이가 육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육아를 ‘엄마만의 의무’가 아닌 ‘부모가 같이해야 하는 의무’로 여기게 되면 우리나라 부모들이 현실적으로 직면한 문제들은 대부분 해결될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특히 이를 위해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 리더십에 대한 제도·교육 등 숙성 안돼

그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지만, 여성 리더십이나 관리에 대한 제도나 교육, 인식 등은 아직 숙성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교육은 너무 교과서적이어서 현실과 괴리가 있어 여성의 사회진출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좀 더 활발해지려면 보험의 기본 원칙이 대수의 법칙인 것처럼 수가 많아야 합니다. 현재 여성의 수는 너무 적죠. 또 대부분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핑크체어(Pink Chair)’입니다. 핑크체어란 남성들과 치열하게 경쟁을 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을 말하죠. 남자들도 하고 싶어하는 일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진출해 성비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이 몸담은 AIG그룹이 추구하는 기업 문화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힌트가 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AIG그룹은 ‘다양성과 포용 (Diversity & Inclusion)’이라는 기업문화를 추구하고 있고, 이를 위해 크게 ‘인재(Talent)·업무환경 (Workplace)·시장환경 (Marketplace)’ 세 가지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먼저 성별에 관계없이 각 업무에 가장 적합한 인재를 배치하고, 모든 직원이 동등한 조건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업무 환경을 추구하고 있다. 또 고객에게 선택 받는 보험사가 되고자 노력하며, 이 모든 노력은 성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장애, 나이, 문화 등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미 미국 본사는 지난 2007년부터 직원들이 주체적으로 기업 내 다양성과 포용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목적을 둔 사내조직을 구성했습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다양성과 포용에 초점을 맞춘 포럼을 개최해 업무 환경 개선에 앞장서고 있죠. 채용과 업무환경, 봉사활동, 사업 개발 등 기업 활동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3일 그와 다른 여성 리더들을 주축으로 해 AIG손해보험 내에 ‘UNI-You & I‘라는 사내 조직을 구축했다. 이 조직은 ’너와 나‘와 ’하나로 단결된‘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현재 AIG손해보험은 전체 직원의 약 60%가 여성이며, 여성임원도 27%에 달한다.

여성의 최고 장점은 멀티태스킹

*사진: 권욱 기자
그는 일을 하는 데 있어 여성의 최고 장점으로 멀티태스킹을 꼽았다. 남성들은 하나씩 순서대로 일을 하지만, 여성은 한번에 다섯 개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멀티태스킹을 잘 활용한다면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능력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부터 솔선수범하고 있다. 매년 철인 3종 경기를 참여해 완주할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매일 새벽 운동도 빼놓지 않는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10년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더 위민 오브 컬러 어워드(The Women Of Color Award)에서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금융계 최고 여성(Top Women In Finance)‘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실히 정하고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즐길 수 있고 만족도 느낄 수 있습니다. 잘 풀리고 안 풀리고는 나중 문제죠. 나이가 많이 들면 잘되고 안 되고는 정말 한끝 차이 밖에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내년 손해보험 산업은 쉽지 않은 한 해가 되겠지만, 산업 본연의 취지를 잘 살리면 앞으로의 성장은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운용 위주의 이익 창출 구조에서 보험심사와 위험 관리를 통한 이익 창출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장기와 자동차보험에 치중해 있는 상품 포트폴리오도 좀 더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0~70년대는 은행업이 최고였고, 1980~90년대는 증권업이 풍미했죠. 이제 보험 산업이 금융업의 탑(Top)이 될 때가 왔습니다. 보험은 다른 금융산업에 비해 사회·의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입니다. 민영보험이 사회보험과 잘 조화를 이룬다면 충분히 승산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소희 AIG손해보험 부사장은?

1963년생이며 1985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사무학 학사를 마친 뒤 1987년 파리 제4학과에서 불어 어학 과정을 수료했다. 또 서던일리노이대학교 회계학 학사와 경제학 석사,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자격을 취득했다.

이후 듀폰 (Du Pont Ltd.) 프로젝트 어시스턴트를 시작으로 모토로라 코리아 재무부장, 알리안츠생명 재무담당 이사, 맥쿼리신한인프라스트럭쳐자산운용과 AIG손해보험(서울)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했다. 지난해부터는 AIG손해보험 재무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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