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우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 짓는다

  • 등록 2013-05-10 오전 6:00:00

    수정 2013-05-10 오전 8:34:48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역사는 종종 필연보다 우연에 의해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20세기 최고의 명작이라 불리는 ‘카사블랑카’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모두가 릭의 카페로 온다’였는데, 제작사는 앞서 개봉된 ‘알제리’의 성공에 자극받아 제목을 ‘카사블랑카’로 변경했다. 이 때 개봉에 맞춰 ‘카사블랑카 회담’이 열리게 됐고, 영화는 예기치 않은 엄청난 홍보효과를 누리게 됐다.

플라스틱 발명에도 우연이 깃들어 있다. 1846년 스위스 바젤대학의 쉰바인 교수는 화학실험 도중 실수로 염산과 질산이 섞인 유리병을 깨뜨렸다. 그가 당황한 나머지 근처에 있던 면치마로 서둘러 용액을 닦아내는 순간, 면 속 성분이 질산과 혼합해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인류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꾼 플라스틱이 우리 곁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같은 사례를 보면서 성공에 운좋은 우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토요일 저녁 8시 로또 방송을 앞두고 복권방 앞에 길게 선 이들도 뜻밖의 행운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찾으려는 마음일게다. 불황과 냉혹한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예기치 않은 행운은 삶의 긴장을 풀어주는 달콤한 여유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 사회가 우연을 가장한 요행의 마력에 빠지는 건 아닌지 우려가 든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프로 스포츠 승부조작 사건이나 불법 사설도박시설, 진화하는 사기범죄들은 요행에 기대 일확천금이나 한탕을 노리는 사람들의 욕심에서 비롯됐다. 최근 치밀한 사전 준비 없이 유행하는 사업에 편승해 수익을 내려다 맥없이 무산되는 기업이 심심찮게 나타나는 일도 같은 이유 때문으로 생각된다.

우연이 성공을 여는 열쇠일 수 있다. 하지만 성공을 가져다주는 우연은 결코 공짜가 아니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카사블랑카의 흥행과 플라스틱의 발견의 9할은 우연이 아닌 땀과 노력이었다. 카사블랑카 흥행에 때마침 열린 회담과 우연찮게 바꾼 제목이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나 전쟁이라는 열악한 여건을 극복한 제작진들의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졸작에 그쳤을 것이다. 플라스틱도 쉰바인 교수의 끊임없는 노력이 없었다면 새로 생긴 쓰레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요행이라는 마력에 빠진 한국경제를 일으킬 치유법이 무엇일까? 해답은 ‘노력 없는 댓가’는 없다던 선대 기업인들의 기업가정신에 있다.

산업화가 시작된 6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 변변한 생산시설은 고사하고 도로, 항만 같은 기본 인프라 시설조차 없는 불모지였다. 수출을 하고 싶어도 세계의 바이어들은 KOREA를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른 땅으로만 기억했다. 하지만 선대 기업인들은 불굴의 노력만으로 이 땅을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 시켰다. 역사에 가정이란 무의미하나 당시 기업인들이 요행이라는 지름길만을 찾았다면 오늘날의 한국경제의 발전은 없었으리라 단언한다.

최근 국내경제를 둘러싼 상황이 여의치 않다. 세계경제 불황과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 원화강세 등 긍정적인 신호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IMF환란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요행만을 쫒는다면 한국경제는 재도약의 기회를 영영 잃게 될지 모른다. 지금은 우연이라는 로또를 찾기보다는 선대 기업인들의 정신을 찾아야할 때이다.

파스퇴르는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 짓는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도 부단한 노력을 통해 경제의 내실을 다져야만 행운이라는 열쇠를 찾을 것이란 걸 알아야 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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