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결산법인들의 2000년 경영성적을 평가하는 정기주주총회가 시작됐다. 2월 15일 시작된 올해 주총은 4월초까지 진행된다. 이번 주총은 주주와 회사간에 심각한 마찰이 빚어질 사안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다.
지난해의 경우 대부분의 기업들이 1999 회계년도에 사상최대의 실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배당관행이 개선되지 않은 점, 또 임원선임 때 집중투표제 도입여부 등 핫 이슈가 걸려있었다.
올해에는 회계법인들이 들고 나온 "엄격한 회계감사"가 기업들에는 큰 부담이다. 또 삼성전자 등 일부 기업에는 사외이사 선임문제를 둘러싼 주주측과 회사측의 마찰이 예상된다.
그러나 상당수의 기업들이 주주들의 높아진 권리의식을 인식해 이미 지난해부터 주총진행에 있어서 소액주주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올해에도 주총에 앞서 실적을 미리 발표하고 설명회도 갖는 등 달라지려는 자세가 역력하다.
투신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올해 주총에는 회계감사 문제를 제외하고는 모든 회사들에 공통되는 핫 이슈가 별로 없는 것 같다"며 "회사별로 사안을 체크해 의결권 행사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대 핫 이슈는 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
회계법인들이 올해부터 법과 절차에 정해진대로의 엄격한 회계감사를 천명하고 나오면서 이른바 "회계 대란"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기아차와 대우그룹의 대규모 분식회계문제로 회계법인들이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동아건설마저 수년간에 걸친 조직적인 분식결산을 스스로 밝히고 나서 회계법인들은 그야말로 전전긍긍하는 처지다.
그 결과로 회계법인들은 더 이상 봐주기식 회계감사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칫하다가는 분식결산에 따른 책임을 모두 뒤집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회계법인들은 기업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의견거절, 부적정의견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엄격한 감사의 불똥은 자연스레 기업에게 튀게 됐다.
감사보고서는 주총 이전에 제출돼야 하기 때문에 일부 기업은 회계법인과의 조율을 위해 주총일정을 변경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주총일정이 당초 예정보다 늦어진 기업의 경우 분식회계여부를 둘러싸고 주총장에서 주주들과의 충돌이 예상된다.
◇사외이사 선임도 부담
삼성전자는 참여연대가 주주제안권을 통해 사외이사 후보를 추전해 놓은 상태여서 주총장에서 선임여부를 둘러싸고 실갱이가 예상된다.
다른 기업들의 경우 비록 주주들과의 마찰소지가 많지는 않지만 사외이사 선임 규정을 지키는 것이 적잖은 부담이다.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상장기업은 이사의 절반이상을 사외이사로 채우도록 의무화됐고 그렇지 않은 기업들도 사외이사를 전체 이사의 4분의 1이상 선임해야 한다.
기업들은 상장사협의회가 사외이사 인력풀을 제공할 정도로 선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스닥기업들은 사정이 더 복잡하다. 증권거래법 개정안에 코스닥기업들도 상장사와 마찬가지로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은 절반 이상, 기타기업은 4분의 1이상의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하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부는 23일 통과된 증권거래법 개정안 부칙에서 이번 12월 결산법인들의 주총에서는 이를 적용하지 않기로 해 코스닥 기업들이 큰 부담을 덜었지만 이로 인해 주총일정을 일찍 확정짓지 못한 기업들이 많다.
◇기업별 현안 놓고 격론 예상
공통된 현안이외에 각 기업별로 각론에서 공방이 예상된다. 구조조정과 관련된 회사측의 구체적인 방향과 비전, 외자유치 등 현안처리가 늦어지는 이유와 대책 등을 묻는 주주들의 공세가 날카로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회계법인의 감사의견이 의견거절이나 부적정으로 나왔을 경우 주주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책임소재가 커다란 이슈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일부 기업은 배당을 예고했다가 예상치 못한 손실발생으로 이를 취소할 상황이어서 고율배당을 믿고 투자한 주주들과 분쟁소지가 있기도 하다.
또 상당수 기업들이 주총에서 주주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는 있지만 주주발언권 봉쇄나 실력행사 등으로 넘어가려는 기업의 경우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주총이후 무더기 소송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